로마서14장_사람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 속했다.
로마서 14장이다.
14장에서는 '형제를 비판하지 말 것에 대해서' 과 '형제를 거리끼게 하지 말 것'에 대해서 기록되어있다.
당시 로마교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있었고,
믿는 바 예수그리스도는 동일하지만, 서
로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자란 터.
이방인의 우상의 제물과 유대인의 관습 등에 충돌이 있었다.
'문화'의 부분에 있어서는 무엇이 옳다 그르다 선하다 아니다 말할 수는 없지만.
비본질이 본질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을 때에 일어나게 되는 '비판'이라는 영역에 대해 오늘 사도바울이 지적하고 있다.
서로 다름에 대해 어디까지 허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영역에 대해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열방에 나가신 선교사님들의 사역현장에서 문화적 장벽에 대하여 여러 오해와 믿음의 시련들이 있다.
비단 열방의 선교사님 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에게도 '다름'에 대해 어떻게 맞이하고 이해해야하는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로마서 14장에 말씀하고 있다.
나는 특별히 14장의 1-4절의 말씀을 통해 '자유함'을 느꼈는데, 골자는 이것이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 속했다"
1절. 믿음의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4절.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어떤 사람이 죄로 인해 믿음에서 넘어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때론 그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앞서서, 하나님보다 앞서가려 할 때도 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나 나에게 '해'가 될 뿐이다.
내가 드릴 믿음의 고백은 '그가 주께 속했습니다. 그를 세우시는 권능은 주께 있습니다' 일 뿐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신뢰하고, 그분께 맡겨진 양을 올려드리는 것.
나는 그저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맡겨드리고, 나는 가만히 있으라는 것인가?
여기에도 철저한 기본원리가 있다.
7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절.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본질중에 본질인데,
그것은 목사님 선교사님 등의 특정한 누군가만 붙들어야 하는 원리가 아니라 '누구든지' 붙들어야 할 기본 진리이다.
그것은 '나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닌 주를 위해 사는 자. 우리가 나의 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다' 라는
철저한 믿음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1절의. 믿음의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의 이 '믿음'은 나로 출발된 '자아생명'이 죽고,
하나님으로 출발된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의 터 위에 산
거듭난 예수생명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된 자는, 모든 이들을 여기까지 이끄는 통로인 셈이다.
몸을 세운다는 것은 '이제 너의 주인은 너가 아니야, 너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야' 주도권의 변화.
더이상 '나의 이야기'가 아닌, '하나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돕는것이다.
어떻게 돕는가?
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인함이다.
저거 아닌데.. 저렇게 가면 위험한데.. 라는 내 마음으로부터 출발된 것은 결국 '전적신뢰'가 아니다.
내가 돌보는 사람들의 주권자는 '나'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
나는 사람을 세울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우실 수 있다.
내 말로 사람을 세울 수 있었다면, 벌써 역사가 일어나도 어마어마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알게된 것은 ,
나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세우셔야 한다.
오직 나와 그가 철저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주의 주도권을 인정하며 살아가도록,
나는 엎드려 기도할 뿐이다.
주님이 세우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