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게 비춰주신 진리는 ‘생명’에 관한 것이다.
“생명=특성+형상” 이라는 진리이다.
독수리면 독수리, 닭이면 닭.
이렇게 생명은 생명에 걸맞는 특성이 있고, 그 특성대로 살아갈 형상이 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움’으로 나타난다.
존재답게 살아갈 생명.
존재가 존재되어지는 생명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 내게 2 구절이 눈에 들어왔는데 첫 번째는 예수께서 명절 끝날 성전에서 나오는 큰 무리 앞에 서서
37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라고 외치셨다. 큰 소리로 이들을 향해 외치셨다.
이 외침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뒷 구절에 보면 사람들이 요동을 한다.
어떤 사람은 선지자라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등 쟁론이 일어나고,
대제사장들은 아랫사람들에게 예수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아랫사람 중 누구는 ‘46절.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의 구절을 보게된다면,
예수님의 외침. 짧고 굵고 간결한 외침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때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오면서 그렇게 생명력있는 말씀은 처음이었다!는 뜻이다.
내 경험을 비추어 생각해본다면, 아마 존재가 흔들리는 것 같은 강력한 말씀이었던 것 같다.
이들이 이렇게 요동하는 것을 보면.
또 보여졌던 구절은 이것이다.
16절.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8절.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예수께서 유대인의 질문에 대답하신 내용인데,
이를 보며 예수님의 생명이 어떠한 생명인지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의로운 생명.
즉 속에 불의가 없는 생명이었고, 참되었고, 자신의 영광이 아닌 보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명이었고,
철저히 하나님과 연합된,
하나님을 빼놓고는 교훈 하나도 할 수 없는 절대의존적인 생명이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마음 깊은 곳에 갈망이 있다.
이것은 존재적인 목마름이고, 존재적인 갈망이다.
한결같이.. 모두가 영원한 것을 사모하고 추구한다.
의롭기를 원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한다.
영원한 것을 간절히 목마르게 사모하고, 본향을 향해 돌아가고 싶어하는 영원한 본향을 모두가 모두가 원한다.
그러나 아담의 죄로서 이 모든 것을 망가졌다. 전부.
내 안에 목마름이 있는지조차 깨달을 수 없도록, 아담의 죄는 철처히 모든 삶의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그분을 알 수 없도록,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오직 ‘나’에게 모든 초점을 맞추도록 완벽하게 죄에 셋팅되어 버렸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회복되었다.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이 일이 가능케 된 것이다. 할렐루야!
오늘 내게 보여주신 ‘생명 = 특성 + 형상’진리.
즉, 독수리는 독수리답게 닭은 닭 답게 사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처럼.
사람도 사람답게 사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도록 창조되었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다운 것인가?
성경에서 살펴본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하나님의 말씀, 거룩함, 성품 따라 사는 것이 사람답고 자연스럽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생명과 형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 형상은 오늘 예수께서 보이신 것처럼
불의가 없는 생명,
하나님 앞에 참된 생명,
스스로의 영광을 취하는 생명이 아닌
하나님이 영광만을 위한 생명,
하나님과 연합된 생명,
절대의존적인 생명이었고,
이 생명에 목마른 모~~~든 자에게!
배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는 약속을 주신 것이다!
그냥 아무나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39절.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이 생명을 받아 누리길 원한다.
나의 진짜 생명.
예수의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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