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의 마지막 장 3장이다.
디도와 그레데 섬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어제와 같이 엄청난 진리의 기준이 들려질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때로는 바울이 현실을 알고는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다.
누차 이야기했지만 독자는 디도이고, 그는 그레데 섬에 있다.
디도는 지금 그레데섬을 목회하고 있다.
그레데! 악질 그레데!
바울은
그들에게 오늘도 이런 자가 되도록 교훈하고 훈계하라고 권면한다.
1절.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2절.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그레데 섬 중에 회심한 몇몇 사람 지도자들에게 지키라고 한 것이 아니라, 2장에 따르면 그레데섬의 성도들.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남자, 젊은 여자를 모두 포함한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면, 그들의 이전 삶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관용하고 범사에 온유함을 나타낼 예수짜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이 사실.
한 영혼을 바라보는 바울의 시각에는 바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내포되어있다.
3절.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서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절.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7절.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누구보다 불가능했던 자가 바울 자신이었던 것을 그는 늘 기억했다.
경건의 모양은 갖추고 있으나, 온갖 향락과 악독과 투기와 정욕에 스스로 마음 한 자락 지킬 수 없어서 죽음으로 내몰려 갔던 시간들을 그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바울의 논리는 이러하다.
나 같은 죄인도 구원받았으니, 이 세상에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은혜로 붙들림 받았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못할 곳이 없다는 것....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출발한 복음이었다.
사람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의 긍휼하심으로 인함이었다.
그렇기에 가능했던 복음..
바울의 외침이 들린다.
"그레데인이여! 일어나라!"
어느새 내 안에,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손이 쉽게 펼쳐지고, 어떤 사람은 어렵게 펼쳐지지는 않는가?
내 편에서 이 사람은 복음이 쉽게 들어가고, 저 사람은 아니고를 가리고 있진 않은가?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진 않은가?
기도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는가?
내가 어디서 구원받았는지 생각한다면, 사람을 이 편 저 편으로 나눌 수 있는가?
도덕적인 죄 몇 개 더 지었다 아니다의 수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존재적으로 죄인일 수 밖에....
죄인..
사람 편에서야 중한 죄 덜한 죄가 있을지언정
하나님 편에서는 죄가 있고 없고의 문제일 뿐이다.
그렇기에.. 덜한 죄를 지은 자는 구원이 가깝고, 중한 죄를 지은 자는 구원이 멀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나를 구원하셨더라면..
나 같은 자도 구원하셨더라면..
그 구원의 복음이 미치지 못할 곳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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