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estament/Hebrews

히브리서9장_단 번에 끝낸 제사로 영원한 기업을 얻다!

Abigail_아비가일 2021. 9. 11. 17:21

사실, 히브리서 기자와 지금 나는 참으로 친해지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별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따르면 히브리서 저자는 헬라어를 탁월하게 구사하는 유능한 설교자이자 성경해석자라고 말하는데, 그래서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다.


수신자는 특정한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집단이라고 말하고 있다만..
아무래도 나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 성경에서 나오는 예법과 성소와 제사에 대해서 참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유대인들은 이 편지를 읽었을 때에, 무엇을 말하는지 단번에 감이 잡혔겠지만서도..


나는 무슨 말인가 한참을 바라봐야 하니 말이다. 이것이 문화의 장벽인가보다.




그러나, 복음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것이 더욱 맞다.


왜냐하면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어도,

결국 예수님의 절대 우월성에 대해서는 두말 없이 수긍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 모두 상관 없이 차별이 없는 복음인 것에 아멘이다.



오늘 본문은 '옛 언약의 예배' '새 언약의 예배를' 비교하며 예수님이 얼마나 완전한 제사장이시며, 얼마나 우월한 제사장이신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옛 언약에서는

6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7절. 오직 둘째 장막(지성소)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었다.

피 없이 드릴 수 없는 제사였다.


구약 시대 때 이들은 이 '제사제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죄사함'이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에 '죄'가 있으면 즉각 심판이기 때문에, 반드시 피뿌림으로 인해 정결하게 된 후에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


22절.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늘상 피뿌림이 있었던 제사.
그런데 그것이 단번에 끝났다고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다.
이것이 '새언약의 예배'이다.

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송아지 피로도 정결케 되어 거룩하게 할 수 있었거든!


14절.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을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정말 아멘이다.



이제 단번에 드려진 예수의 피로 인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그리스도의 피! 나의 죄를 속하는 그리스도의 피!

그 피로 인하여 언제나 거룩함과 정결함을 입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열린 것이다!



단번에! 모든 사람을 담당하신 그리스도!
한큐에! 모든 것을 영원히 끝내신 예수님!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26절...... 이제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오늘의 결론은 15절로 잡았다.


15절.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된 나는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었다.

그것은 사람의 수준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수준이다.
나에게 기업을 주시는 분이 그분 싸이즈가 엄청나다.
영원한 싸이즈이고
약속을 주시는 분이다.

부르심을 입은 자.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받게 하시려고
아들을 내어주실만큼

하나님 그분은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을 엄청나게 주고 싶어하신다.
자신의 아들에게 줄 기업만큼 내게도 그 기업을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