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의 마지막 장인 16장이다.
고린도전서를 1장부터 묵상하면서, 책 한권 전체가 '매질'과 같다고 생각했다.
매질인데 '사랑의 매질'이다.
어미가 자녀를 양육하듯이, 그렇게 사도바울은 진통을 겪어 낳은 교회에게 매를 아끼지 않는다.
사랑하기에 책망했던.. 고린도전서의 마지막 장 16장의
마지막 절은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24절.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선생은 가르치고 떠날 수 있지만, 어미는 그럴 수 없다.
몸은 떨어져있어도 엄마는 엄마이기에 자신이 낳은 자녀에 대한 책임이 있다.
누가 짐을 지어준 것도 아닌데 매우 자발적인 사랑의 속성을 지닌 책임을 지니고 있다.
눈을 감을 때까지 말이다..
사도바울이 교회에게 끝까지 포기치 않고 타협치 않고 주고 싶었던 가치가 무엇이었을지 짚어보게 되었다.
아이가 징징대고 싫다해도, 결국엔 그 입에 사탕이 아닌 밥을 주는 어미의 마음처럼
죄와 교만에 쉽게 무너지는 고린도교회에게 바울은 끝까지 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의 핵심인 '십자가 예수의 사랑'이며 '이웃 사랑'이었다.
16장은 두 주제로 나뉘어진다.
1-11절. 가난한 자들을 위한 연보
12-24절 편지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인사 이다.
나는 오늘 본문인 16장을 보며, 앞부분인 1-11절에 집중하게 되었다.
바울은 이전에 고전 16장을 보면서 '재정 후원 요청'이구나, '인사'이구나.
이 정도로만 여겼었는데 오늘은 다르게 보였다.
단순히 재정후원을 요청한 것이 아니였다.
이들에게 동역을 요청하고 있다.
아니, 동역이기 이전에 고린도교인들에게 마땅한 성도의 삶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2절.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절.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에게 가지고 가게 하려 함이라.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구제하려고 구제헌금을 이방인 교회인 고린도교회에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구제헌금을 모을 때에,
'매주 첫날에' .그러니까 매주 조금씩 자신의 재정의 일정금액을 떼어 모아두어라.
나중에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에 부랴부랴 한꺼번에 작정해서 내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스스로 매주 조금씩 액수를 떼어 놓으라.
가만 보니 이 권면은 권면하는 바울 쪽에서도, 이것을 받는 고린도교회 쪽에서도 얼마나 믿음의 댓가가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라!
오랜만에 편지 온 담임목사님께 엄청 혼나고 권면만 듣고
그리고 예루살렘 가난한 성도를 위한 구제헌금을 매주 떼어 하라고 하는 편지를 읽게 된다면!
또, 자주 가지도 못하고 여러 문제가 많은 고린도교회,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베드로파 예수파 사람들도 섞여있는 그 교회에 예루살렘 성도의 구제에 대해 나누어야 한다면!
정말 둘다 어려울라면 참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사도바울 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 모든 상황을 뛰어넘을 만큼의 고린도교회에 꼭 심겨주고 싶은 성경적 가치관이 있지 않았을까 ? 싶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도바울이 단순히 예루살렘 구제 재정만을 위해서 고린도교회에 요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먼저 사도바울은 재정에 대해서 깨끗했다.
근거 구절은 고전 9장에서 찾을 수 있다.
11절.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8절.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그의 재정관은 철저히 '복음 때문에'였다.
복음이 전달되기 위해서 ,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해서 그가 받을 수 있는 재정후원에 대해서 깨끗하게 권리를 포기했다.
혹여나 오해가 되어 복음에 장애가 될까 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예루살렘 구제헌금연보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요구한다.
심지어 매주 첫날, 금액을 떼어놓으라고. 꾸준히 하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늘 이타적이었던 사도바울의 삶에 비추어본다면, 이것은 자신의 사역이나 자신의 이름을 위한 헌금은 아닐 것이다.
오직 예루살렘 성도의 구제와, 고린도교인의 믿음의 진보를 위한 것일 것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것을 줘 보고, 자신의 시간을 권리포기 줘 보면, 비어진 그 자리에 하나님의 평강과 축복으로 채워지는 것을 말이다.
사도바울은 이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같다.
너희 홀로 가는게 아니야
온 열방의 교회와 함께 가는거야.
너희도 영적인 선물을 받았다면, 육적인 것으로 줄 수 있어야해.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꺼야.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을 함께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채우시는 영광에 함께 동참하는 기회를 주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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