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estament/Corinthians

고린도후서2장_하나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Abigail_아비가일 2021. 9. 9. 01:38

고든D 피. 더글라스 스튜어트의 '책별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몇 구절이 고린도후서를 접하는 내게 큰 위로가 된다.

"고린도후서 둘러보기" 챕터에 이렇게 소개가 되어있다.

 

'고린도후서를 읽는 것은 매우 복잡한 드라마의 중반부에 텔레비전을 켜는 것과 흡사하다.

사람들이 대화를 하고 사건이 전개되고 있지만, 우리는 등장인물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줄거리도 이해하지 못한다.

실제로 고린도전서를 읽은 후에 고린도후서를 접하면 다른 세계로 들어왔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 고린도전서 2장을 맞이하는 내게 동일한 감정이 일었다.

'사도바울과 고린도교회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짐작하기로는 '고린도전서의 책망의 편지, 마게도냐 방문 계획의 취소' 등의 이유로

바울을 향하여 오해가 생겼을 것으로 짐작하는데,

고린도후서를 읽어내려갈 수록 그것말고도 다른 오해가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책별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총 5번 서신을 보냈으며,

나중에 전달되는 과정에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2권으로 통합되었을 가능성을 말하며 근거구절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그러나 나는 오늘 고린도후서 2장에서 사건의 배경과 줄거리 상관없이

사도바울의 마음 중심에 담겨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서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도바울 그는 위대한 위인이 아니였던 것 같다.

그에겐 충분히 우러러 볼만큼의 대단한 믿음의 행진이 있었지만,

 

그저 연약한 피조물.. 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저 순종함으로 길을 걸어가는 나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마음 짠하게 느낄 수 있었다.

눈물 많은, 마음이 데일만큼 뜨거운 아저씨? 아빠?같이 보여졌다.

그는 고린도교회에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무서운 '사랑의 매질'을 한 이후에 이렇게 고백한다.

 

4절.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이 대목에서 난! 알겠어요.. 알겠어요.. 말안해도 알겠어요..당신의 마음을 알겠어요..서신 안에 들어가 내가 대신 사도바울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ㅎㅎ)

 

또 혹시, 바울의 서신으로 인해 고린도교회에서 엄청 징계를 받은 자가 있을까봐, 이렇게도 말한다.

 

6절.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절.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그 위대한 바울이, '두려워했다'라고 표현한다.

한 영혼이 실족할까봐.. 두려워했다.. 그가 너무 근심에 잠길까..

죄로 인해 더욱 고통스러울까봐 근심했던 과정이 역력하다..

 

어렸을 때 엄마한테 회초리가 부러질만큼 종아리 맞고, 내가 잘때 눈물로 약을 발라주시던 장면이 생각났다.

 

아 정말, 사도바울은 이들의 부모였다.

이들을 지극히 사랑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말이다.

 


이 사랑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것인가.

사도바울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한 사람안에 부어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일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두리뭉실하지 않다.

철저하게 댓가를 치루신 사랑이었다.

 

죄 있는 것을 '없다, 그냥 눈감아줄게. 없는 것 치자..' 하는 사랑이 아니다.

철저한 댓가를 지불했다.

당신의 독생자를 지불할 만큼의 댓가를 다 지불한 사랑이었다.

죄에 대해서 철저한 댓가를 치루셨다.

대신 십자가를 져주신 사랑이었다.


 

또한 그 사랑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능력이 있는 사랑이다.

'좋은게 좋은' 그런 얼렁뚱땅한 사랑이 아니다.

한 사람의 '영원한 삶'을 가릴 수 있는 사랑이다.

오늘 바울은 자신안에 부어진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14절.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절.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사망'으로 느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느껴지는 사랑이다.

두리뭉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죄에 대해서 책망하고, 진리에 대해서 격려하며 환호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자에게는 이 사랑이 향기로 느껴지지만,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는 사망으로 느껴지는..

너무나 명확한 이 사랑.

 

철저히 진리의 편에 선 사랑. 오직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사랑.

이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