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긴 여담은 계속된다.
오늘 묵상 본문은 고후4장이다.
3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맡은 새언약의 일꾼이라 표현한 바울,
복음을 맡은 자에게 '오늘이란?' 어떤 것일까.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고, 많은 무리에게 사랑을 받은 바울 .
그는 사랑받는 동시에 수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밖으로는 '갈등'을, 안으로는 '두려움'을 견뎌내는 수고가 그의 평생에 잇따랐다.
그러나 그는 견뎌냈다.
무엇이 그를 버티고 견디며 이기게 하는 원동력이었을까?
오늘 고후4장에서 그의 내면의 씨름, 치열함을 이겨낼 수 있었던 푯대와 소망,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힘에 대해서 엿볼 수 있었다.
먼저는 그가 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로가 되었다.
그가 약한 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것.
그와 내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
그도 희노애락이 있는 인간이었다는 것.
주님때문에 울고 웃으며 함께 교제하고 나누며,
또 때로 행복해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는 인간이었다는 것이
오늘 같은 믿음의 걸음을 가는 내게 위로가 된다.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역설적이게도 그가 역사상 가장 놀랍게 하나님의 손 안에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질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심히 큰 능력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실제 믿은 것이다.
11절.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항상'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항상' .. 죽음에 넘겨진다.
그러면 생명을 얻는다.
'죽어야 사는' 역설적인 복음의 신비를 바울은 온 몸으로 깨달았다.
자신의 육신의 생명으로는 절대, 결코, 하나님을 찾지 않는
옛 자아에 속한 모든 것을 '부인하고' , 예수의 생명을 덧입는 것이다.
그는 이 표현을 갈라디아서에 이렇게 표현한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이 생명은 '바로,지금,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된다.
8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절.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절.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복음은 정말 능력이 있다.
답답한 일, 낙심되는 일, 박해를 받는 이르 거꾸러뜨리는 일. 이것을 능히 이길 능력이 있다.
6절에서 이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6절.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예수님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
모세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도 어마어마했는데,
예수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마음'에 비추어졌다.
나로 출발하는 모든 것을 부인하고, 예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할 때, 언제나 늘 하나님의 자비하신 영광이 마음에 비추어진다.
고린도후서를 순서대로 묵상하며, 내 안에 동일한 씨름이 있음을 직면하게 된다.
외부적인 우겨쌈과 답답한 일 보다, 지금 오늘을 사는 내게 갈등과 두려움, 나의 나약함.
죄된 모습에 직면케 되어질 때에 멈춤 단추를 눌러버린 듯이 일시정지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인정하게 하심에 감사하다..난 약한 자라는 것이 말이다..
스스로 할 수 없는 그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존적인 존재로 빚어가심에 감사하다.
바로, 지금, 오늘을 사는 나에게 이것도? 하는 물음이 드는 선택의 기로에 직면한다.
이것도? 맞다.
이것도까지이다. 이것도 나는 스스로 할 수 없다.
이것까지? 여기까지? 맞다. 여기까지도 하나님의 손길이 미쳐져야 한다.
여기까지도 예수의 공로를 힘입어야 한다.
10절.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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