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이번에는 “나병”에 관한 규례이다.
● 나병을 진단하는 과정
- 어떤 사람에게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류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겼다. (2)
-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의 아들 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가야 한다 (2)
- 제사장은 피부의 병을 진찰한다. (3)
- 환부의 털이 희어지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지면 이는 나병의 환부이다. (3)
- 제사장은 진찰하여 그를 ‘부정하다’라고 할 것이다. (3)
● 피부에 색점이 희나 우묵하지 않거나 털이 희지 않을 경우
- 제사장은 그 환자를 이레 동안 가두어 둔다 (5)
- 이레 만에 제사장이 그를 진찰한다 (5)
- 환부가 변하지 않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않았으면 제사장은 다시 ‘7일’을 가두어둔다(5)
- ‘7일’만에 다시 또 진찰한다 (6)
- 환부가 엷어지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않았으면 피부병이다. 제사장은 이를 ‘정하다’고 한다 (6)
- > 옷을 빨면 정하여 진다 (7)
- 그러나 병이 피부에 퍼지면 제사장에게 보인다. (7)
- 제사장은 진찰한다. 그 병이 피부에 퍼졌으면 ‘부정하다’ 할지니 이것은 ‘나병’이다.(8)
“당신, 부정합니다.”
라는 최종 선고를 받았을 때.. 선고를 받은 당사자는 어떠할 것인가.
당사자와, 당사자의 가족은 어떤 마음일까.
성경해석 스터디바이블에 따르면,
당시 ‘나병’이 지금의 한센병을 말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당시에 넓은 의미로의 ‘악성 피부병’을 나병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를들면 마른 버짐, 두드러기, 황선, 혹은 백선과 같은 이러한 질병들을 이 당시에는 ‘나병’이라 진단하는 것이다. 주천 천 년대의 말엽에 이르기까지 나병은 명백하게 언급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병의 기본적인 증세가 성경에 언급되어져 있다,
환부의 털이 희어지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진 것을 말한다.
그리고 제사장이 보았을 때에, 그것이 명백할 때에는 ‘부정한 것’이다.
그 사람은 ‘부정한 자’가 된다.
부정한 자....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
앞서 레위기 12장을 묵상하며, 레위인의 3단계적 사고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았었다.
거룩과 정결 그리고 부정에 대한 사고법이었다.
정결한 상태는 거룩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부정한 상태는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꼭 ‘정결’의 상태를 유지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신의 병으로 인해 ‘부정한 자’가 되었다.
이러한 자는 자신의 병이 나을 때까지 진 바깥에서 ‘혼자’ 살아야 했다.
진 바깥에서 자신이 부정하다 하며 공동체에서 떨어져 혼자 있어야만 했던 ..
이 당시 사람들에게 ‘나병’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병이었을까.
물론, 이 사람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거나 공동체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결한 상태의 사람과 사물에 접촉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이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병’이란 선고를 받는다는 것은 이들에게 참으로 치명적인 무엇이었겠다.
공포스러운 무엇이었겠다.
피부에 무엇이 돋아나는 것 만으로도, 이들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부정한 자.. 부정하다는 판결을 받은 자..
나는 부정하다.. 하며 언제 나을지 모르는 병을 희미한 소망을 붙들고, 병이 나을 때까지 격리되어 있는 것.
아무리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 없다거나 공동체의 사랑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이 사람이 무슨 죄가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와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며..
부정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미운털 박혀있던 이웃집이었다면, 이참에 적극적으로 격리에 찬성(?) 했을 것이다.
아무리 아니라 해도...
이 사람은 부정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선고. ‘나병’..
오늘 이 본문을 보면서, 나는 마태복음 말씀이 생각이 났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실 그 때에,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예수님이 그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대신 것이다!
3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나병이 깨끗하여 진지라.
나병이 깨끗하여 진 것을 넘어서, 정말 나병환자에게 감동이었던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대어주신 것... 이 아니였을까.
오래토록 사람들에게 격리되어 분리되고, 사람의 온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나병환자..
사람의 접촉이나 손길은커녕, 수군거리는 눈빛과 조롱의 태도를 .. 언제까지? 나을때까지? 혹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늘상 죄인처럼 부정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그에게,
예수님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음성이 들린다. ‘내가 원한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셨다.
손에 닿으면 무조건 ‘부정’해지는 율법을 뛰어넘으시는 율법의 완성이 되신 분.
그는 하나님이셨다. 나병이 즉시 깨끗해진 것은 , 그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하신 것이다.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대시는 분.. 그는 나병환자의 가장 큰 결핍이 무엇인지 알고계셨다.
그것은 사람의 손의 온기였다.
그리고, ‘내가 원한다’ 라고 말씀해주시는 분..
그냥 ‘깨끗함을 받으라!’ 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 ‘내 마음이 네가 낫기를 원한다’ 라고 하시는 분
바로 이분이다.
이분이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최근에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차 안에서 야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내가 바라본 중에는 어떤 사람은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안믿는 사람도 있었을 터인데, 믿는 사람이거나 안믿는 사람이거나 전부 죄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냥 두면 자멸할 사람들일텐데..
어떤 보이지 않는 손길이 완전히 극으로 달려가 자멸하지 않도록
붙들고 계신다는 생각.
어머니의 품처럼, 그들이 알든 모르든 더욱 완전히 죄악에 빠져 죽지 않도록
아주 단단한 그물망을 치고 계신다는 생각..
보이지 않지만, 실제한 어떠한 손이 붙들어 주시고 계시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죄가 너무 엄청난데, 그것을 뛰어넘는 강력한 은혜로 붙들고 계신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없었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쯤.. 모두가 자멸했을 것이다.
온 지구가 불타서 없어질만큼.. 가공할 죄의 능력으로 이미 멸망했을 터인데..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한다.
망할 것 같아. 죽을 것 같아. 보이지 않아. 하는 바로 그 때에 기억해야할 것은 은혜이다.
하나님 내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주셨는가.
아들 예수를 주시는 상상할 수 없는 은혜를 주셨다.
취업 좀 되고 좋은 학교 들어가는 그정도 은혜와는 상상할 수 없는 은혜
본질적인 해결책을 주셨다.
미끄러지기 쉬운 죄인, 잊어버리기 일쑤인, 높아진 마음에 스스로 넘어질 그러한 자에게
이 모든 것이 은혜야.
은혜를 기억하라. 그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라.
그것이 얼마나 나를 살게하신 은혜인지,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라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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