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Leviticus

레위기27장_받으시는 하나님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7. 00:39

#1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때론 내 마음의 동기를 나도 모를 때가 많은 듯 하다.

스포이드로 방울방울을 떨어뜨려 번져가듯이, 내 안에도 거룩에 대한 열망이 일어났던 것 같다.

어느샌가 일상적인 무엇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염소가 새끼를 나앗고 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내 마음 안에서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생각해내었다.

‘그래 고놈이다 가장 키가 크고 튼실한 놈이다 언젠가는 이 놈 잡으려 했는데, 그 때가 이 때구나’

 

그렇게

가장 듬직허고 목소리가 우렁찬 숫소를 하나님께 드리기로 했다.

 

걱정이 된다.

‘정말 이렇게 드리면 되는 것인가? 나 몰래 이놈이 죄 지은 놈 아닌가?’

여까지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가축놈이 무슨 죄가 있겠어. 죄는 내가 지었지’

 

혼자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모세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이 스쳐 지나간다.

9절. 사람이 서원하는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가축이면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

 

내 이 가축 놈도 받아주시는 하나님.

거룩하다고 받아주신다.

 

이 놈은 하나님의 것이었다.

아니.

이 것은 하나님 그분의 것이다.

 

이제 내 손에 돌아올 수 없는 그분의 것이다.


#2

내게는 부정한 것 뿐이다.

 

원래 나라는 놈이 그랬듯, 온통 부정 투성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부정이었다. 뭐 말로 표현해봐야 모하겠나.

버려진 자식. 버려진 몸.

어쩌면 태어나지 않기를 내 부모가 바랬는지도 모르지.

 

어찌 된 것인지, 지 주인을 닯았는가. 내게로 오는 모든 것들이 부정하게 되는가.

내 가축놈들은 죄다 부정하다.

여기가 상하고 저기가 상하고.. 성한 놈이 있나 말이지.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어찌되었든 내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성소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집에 오기 싫어졌다.

비릿한 피냄새와 소나 염소같은 가축들의 꽥꽥 대는 소리가 귀를 거슬리게 하지만은.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런 짐승소리와 피를 좋아하실 분이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그 이상의 무엇.. 그 이상의 무엇..

 

내가 제사를 드렸을 때의 일이다.

속죄제를 드렸을 때…

속죄되었다는 것. 내가 속죄되었다. 나의 더러운 것이 씻겨져 내려갔다는 것..

하튼 나는 일자무식이라서 무어가 무어인지 모르다만은 ..

 

나는 성소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부정한 그놈이라도 드리고 싶었다.

 

11절. 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못할 가축이면 그 가축을 제사장 앞으로 끌어갈 것이요

12절. 제사장은 우열간에 값을 정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

 

제사장은 시장에 갔다가 내 부정한 소를 팔았다.

그리고 ..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그 성소에.. 그 가축놈의 값이 지불되었다.

 

내 인생에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

 


뭐이 이리저리 적어보면서..

‘받아주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게 된다.

받아주시는 하나님…

 

가장 비천한 자리에 있는 사람의 제물도 받아주시는 하나님..

만약 이스라엘 지파중 가장 오른 쪽 끝, 가장 위쪽 끝에 있는 지파 중 가장 가난하고 가장 보잘것 없는 한 사람의 마음에 성소를 향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일어난다면..

그 사람을 받아주시는 하나님..

그 사람의 예물과, 그 사람의 서원과 고백을 받아주시는 하나님 말이다.


만약 그 제물이 부정했다 할지라도..

그 부정한 짐승의 값을 치뤄 성소에 쓰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부정한 것을 받을 수는 없지만,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것을 받아주시는 하나님 말이다.


 

내 삶 속에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생각해본다.

나를 받으신다.. 라고 생각하지만,

내 삶의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두려움 속에서. 이렇게 하면 기뻐하실까? 내가 잘 선택한 것이 맞을까? 이것은 틀린 것이 아닐까? 등등의 고민으로 쉬지 못하는 내 마음을 발견한다.

 

‘나를 받으셨다’ 혹은 ‘나를 받으신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나를 받으셨다는 것은… 나의 허물과 나의 약함과 나의 모든 것을 받으신 하나님..

용납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나는 과연 얼마나 그 하나님을 이해하고 받고 있는가?

 

어쩌면 그렇다.

만약 내가 절벽 끝에서 바둥바둥 대다가 미끄러진다 해도. 그 밑에서 손을 펴 받으신 하나님일 것이다.

만약 내가 혼란의 카오스 속에서 무엇이 맞는지, 어디가 맞는지.. 혹은 선택한 것이 잘 되었는지 등등의 생각을 한다 할 지라도….그 자체를 전부 받고 계실 것이다. 아마 예배로 받고 계실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

하나님의 용납하심과 용서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높이와 길이를 말이다.

나날히 배워가는 것 같다.

나를 참으신 나를 용납하신 하나님..


 

주님께 안기는 것.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실 것 같다.

 

누군가 내가 친하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원하는 것이 뭘까? 생각해보니..

그 사람의 선물도 아니고, 그 사람의 섬김도 아니고..

그냥 나를 기뻐해주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를 즐거워해주고.. 내 품을 따뜻하다고 안정감을 가져주는 그런 것이었다.

나도 상대방에게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주님 안에서 안정감을 찾고 그분을 기뻐하고 그분의 용납하심과 용서하심을 누릴 때, 그분은 기뻐하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