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승리의 법의 성취이자, 모든 선지자들이 바라보았던,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생명으로 살게 되어진 이 은혜의 법이 선포된 8장을 지나..
복음을 받은 자의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인 '애통함'이,
9장의 첫 시작이다.
1-2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성령께서 증언할 정도의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은 바로
3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 을 위함이었다.
그는 3절.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슫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토록 사모하는 그리스도께 끊어질 지라도 원한다는 표현을 한다.
천국과 지옥이 너무도 확실하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의 성령의 법도 확실하고
그것이 죄와 사망에서 완벽하게 해방하게 하셨음도 너무 확실하고
영원한 삶이라는 것이 육신의 죽음 후에 영원한 삶과 더불어
지금 이 땅에서의 영원까지도 누릴수 있음을 알게 되어진 그에게서는
말씀도 있고 예배도 있고,
심지어 그리스도가 그들을 통해서 났는데도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의 동족들을 향해
애끓는 애통함이 있었을 것이다.
4절.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절.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
이것이 진짜 복음을 받은 자의 마음이다.
내가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 바라는 바로 이 마음..
그런데 , "우리 동족들이 예배를 끌어안고 있으면서 구원받지 못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에서
갑자기 이어서 9장의 논조가 바뀌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찬양한다.
5절.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애타고 애끓는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마저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구원사역을 바울은 보게 된 것이다.
7절.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11절.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7절. 아브라함의 씨를 불러
8절.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말하여
11절. '하나님의 뜻이 행위가 아닌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신다' 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바울의 이야기를 들으면 , 이렇게 또 질문할 수 있겠지.
"그러면, 모든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에 있다? 그럼 불공평한거 아닌가? 누구는 구원의 역사의 통로로 주인공으로 쓰임받고, 누구는 마음이 완고하게 되어 주연으로 쓰임받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면, 뭔가. 우리는 꼭두각시인건가?"
자, 바울은 이 질문에 바로 속 시원한 대답을 한다.
20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절.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전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분은 멸하기로 준비된 그릇을 관용하시는 분이시고,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그릇에 대해 풍성하게 보이신 분이시다.
22절.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절.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30,31절에 보는 바와 같이 '의'를 '믿음으로' 얻은 자와 '의의 법'을 '자기 열심으로' 따라간 자를 확연하게 구분하신다는 말을 덧붙인다.
30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절.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의를 '믿음으로' 얻은 자는 그리스도의 의를 얻으나
의의 법을 '자기열심으로' 따라간 유대인은 결국 , '율법이 이르지 못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까지가 9장이었다.
이어 10장, 11장까지는 '남은 자' 사상이 이어지게 된다.
보이신 여러 진리 중에서, '절대 주권'이라는 진리에 집중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만물의 통치자이시다.
그분은 온 열방을 통치하시는 통치자이시다.
그분은 사람의 행위가 아닌 자신의 주권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부르심의 주체가 '나'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것이다.
감히 그분 앞에서 '자신의 의'를 세울 수 있는가?
만물을 통치하는 분 앞에서?
감히 반문할 수 있겠는가?
온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을 절대신뢰 해야 한다.
나는 어느정도, 어디까지 주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내게 있어 그분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열방의 통치자로, 정말 인정하고 있는가?
신뢰라는 것에 80% 신뢰하고 90% 신뢰하고 이런 것이 있을까?
신뢰는 100%이어야 한다.
그래야 나를 움직일 수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을 신뢰하고 인정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으로 그분을 따르는 자에게는 '믿음으로 난 의'를 얻게되고,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의의 법을 따라가려다가 결국 '율법에 이를 수가 없다'는 롬 9:30-32의 진리 앞에 선다.
30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절.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절.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음의 법.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절대 신뢰로 서는 것.
이것이 오늘 부딪힌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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