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인의 임무
다른 나라와 다른 이스라엘의 백성의 특징은 바로 한 가운데에 ‘하나님’이라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모두 이 분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편성되고 굴러간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조금만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을 칠 때에 어디를 쳐야 하는지 단번에 알았을 것이었다.
그들이 감싸고 절대 적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
심지어 자신들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결코 가까이 올 수 없도록 철통 방어하는 것.
백성의 한 지파라는 많은 부분을 떼어내어서라도 반드시 이것을 섬기게 하는 어떤 것.
바로 이 부분.
'성막' 말이다.
레위 지파는 계수되지 않았다.
다른 지파는 모두 계수되어서, 숫자의 총이 60만이라는 것이 나왔지만
이 지파는 당당하게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빼내어 주셨다.
그리고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어떤 직분을 맞게 하셨다.
47절. 그러나 레위인은 그들의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48절.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9절. 너는 레위 지파만은 계수하지 말며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계수 중에 넣지 말고
50절.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51절. 성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성막을 세울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세울 것이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며
그랬다.
그들은 성막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하였다.
성막과 함께 살고 성막과 함께 자고 성막에서 생활하며 성막과 함께 인생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위하여, 철저하게 구별된 성막 중심의 삶이었다.
오로지 성막만을 생각하는..
성막 밖에 모르는..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의 삶을 위해, 자신들이 성막에 헌신된 삶이 그렇게나 중요했던 것이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더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막사를 쳤지만 자신의 진영 안에서 막사를 쳤다.
그러나 레위인은 성막 주위에 진을 쳤다.
이것은 성막에 대한 책임이었다.
성막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일반 백성이 성막에 들어온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외인이 들어오면 그들을 반드시 죽여야 했다.
그것이 바로' 성막에 대한 책임'이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 백성에게 임하지 않도록,
그리고 이 성막을 성막되도록 온전히 지키는 것.
그것이 이들의 평생에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어주신 몫이었다.
52절.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53절.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이것은 참 특이한 민족의 생존방식? 이었다.
어떤 민족도 이렇게 자신의 신 중심으로 착착 움직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전쟁을 치를 때마다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올라가 향을 피우고 절을 했겠지만, 그 이유는 물론 전쟁에서 이기게 해달라는 소원을 아뢰는 정도 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달랐다.
철저하게 모든 삶에 ‘성막’이 중심에 있었다.
이들은 어느지파에 사람이 어디를 바라보던 ‘성막’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성막이 보였다.
그들은 자나깨나 성막을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 백성 중 엄청나게 많은 숫자인 레위인들이 ‘오직 성막’만을 위해서 존재했다.
그들은 전쟁에도 포함되지 않았는데, 효율성으로 따져본다면 이것은 정말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인은 계수되지 않고 ‘오직 성막’만을 위해 있었다.
자신들이 전쟁에 나가지 않고 '성막을 지키는 것이 온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성막 중심의 삶’으로 편성되었다.
철저하게 ‘성막 중심..’
성막이 이동하는대로..
성막이 멈추는 대로
성막 안에서 일어나는 모세와 하나님의 대화로 인해, 진의 모든 것이 결정되어지는..
이 새로운 삶에 이들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몇이나 알았을까?
누가 이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살았던 애굽에서의 삶과 전혀 다른, 전혀 차원이 다른 삶으로 인도함 받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철저히 성막 중심의 삶..
이것은 지금을 사는 나에게도 곧장 적용이 된다.
예수를 믿었다는 말은, 결코 구원 하나 받았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천국 갈 수 있다 정도가 아닌 것이다.
그 말은 즉슨,
애굽에서의 먹고 즐기고 놀고 마시던 병든자아에 찌들어 살던 모든 죄의 옛습관의 나의 자아가 십자가에 ‘죽었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애굽에서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생활 패턴
그것은 ‘철저히 성막 중심의 삶’ 이었던 것이다.
나의 일생의 모든 영역에서..
나의 시간, 나의 비전. 나의 미래, 나의 공부, 나의 앞길, 나의 하루의 삶, 나의 재정관리, 나의 선택, 나의 가치관, 나의 철학, 나의 입는 습관, 나의 먹는 습관, 나의 자는 습관, 나의 대학선택, 나의 직장선택, 나의 자녀를 기를 때..
이 모든 것들!!
이 모든 것이 ‘성막 중심의 삶’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의 애굽에서의 익숙한 찌든 삶이 아니라,
말씀에서 말하는 대로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피어나오는 은혜대로
순종하며 따라가는 새로운 삶...
바로 이것에 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
성막 중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하나님 계신 성막을 바라보는가?
자기 전에, 하나님 계신 성막을 바라보는가?
순간 순간, 성막을 바라보는가?
하나님 더 깊숙이 이 은혜로 나와 우리를 인도해주시기를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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