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Numbers

민수기1장_하늘의 관점으로 보라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7. 01:44

그렇게 12지파가 계수되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스라엘의 장자인 르우벤 지파부터, 차례차례로 20세 이상의 싸움에 나갈 각 남자를 명수대로 계산하였다.

그렇게 르우벤 지파에서는 46,500명이 계수되었다.

 

20절.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 대로 다 계수하니

21절. 르우벤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사만 육천오백 명이었더라.

 

그렇게 모든 지파가 계수된다.

 

시므온 지파는 59,300명

갓 지파는 45,650명

유다지파는 74,600명

잇사갈 지파는 54,400명

스불론 지파는 57,400명

에브라임 지파는 45,000명

므낫세 지파는 32,200명

베냐민 지파는 35,400명

단 지파는 62,700명

아셀 지파는 41,500명

납달리 지파는 53,400명..

 

총 603,550명 이었다.

 

60만명쯤 되는 장정들이 시내산에 있는 것이다.

아, 아이와 여인들과 노인까지 합하면.. 음. 약 200만명 아니였겠는가.

 

가만 있어보자..

200만명이라..


분명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전해 들은 것으로는 ..

야곱의 12아들의 가족들이 꼴랑 70명이라고 했었는데..

언제 이렇게 아덜이 많아졌넌가...

 

사람들은 참으로 신기할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게나 참으로 신기하지 않소? 아니 뭐 저..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한다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지 않소.. 그 우리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말이요”

“그렇죠 아마도. 아브라함에게는 콩알만한 씨도 안보였는데 원 오직 이삭 하나 였었잖아요”

“ 언제 이렇게 많이 불어났지? 허긴 거시기 뭐냐. 400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꺼라 말씀하시지 않았겠어요”

“ 줄기차게 말씀하셨지. 변함없이”


그들은 약속의 성취의 현장에 서 있었다.

그들이 바로 약속이었고,

그들이 바로 나타난 약속의 실재였다.


60만명의 정정한 사람들..

그리고 2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이 실재가 되어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 ..

약속의 성취의 현장.

그들은 바로 그러했던 것이다.

 


나는 오늘 묵상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 이들은 아주 생생한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의 현장에 와있다.

그들이 간접적인 경험자도 아니고 그들이 실제 자신들의 삶 속에서 실제 생생하게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 실재인 것이다.

 

본인들이 산 증인이고, 본인들이야 말로 가장 기다려왔던 약속의 성취 세대 였을 것이다.

 

그렇다만,

이것을 알았던 자는 몇이나 있었을까?

이것을 깨닫고 기뻐했더너 자는 몇이나 있었을까?

오히려 이들은 약속의 어떠함보다..

 

잇사갈 지파가 아셀 지파보다 숫자가 많으네..

므낫세 지파는 꽁지로 숫자가 적으네..

유다 지파가 제일 많으네..

 

하면서, 자신들이 밟고 있는 현장이 약속의 성취 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 웃고 울고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러했을 가능성이 참으로 높다.

왜냐하면.. 이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은 출애굽 1세대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불평했고 원망했고 두려워했던 세대들이었다.

애굽의 좋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세대들..


참으로 가련하다고 생각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보호하심이 약속되고 자신들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한 톨도 누릴 수 없다면 말이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애굽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하여서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보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지금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잠깐 웃고 잠깐 울고 그렇게 인생을 탕진하게 하는..

영원한 것을 가려버리는 눈가리개로. 애굽은 지금도 쓰임받고 있지 않는가?


다시 한번 생각하건데,

애굽과 하나님의 약속이 섞일 수 없이 정 반대편에 있듯이

하나님과 세상도 절대 섞일 수 없는 정 반대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조금도 섞일 수 없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이다.

 

세상 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가치를 보지도 누리지도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들을 비방하고 조소하며 조롱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감격한다.

약속의 성취에 있다는 것으로 기뻐하고,, 나같은 자에게 이러한 영원한 것들이 성취되어진 것으로 감사하며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이다.

 


 

세상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정말 보잘 것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정말 큰 사람이다.

이 가치관이 충돌을 한다.

 

내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 푹 젖어 있을 때에는 내가 그토록 소중하고 존귀하며 놀라운 말씀의 성취의 현장에 매일 기적을 체험하고 맛보고 있는 반면

세상 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참으로 부족하고 없고 한심한 것이다.

 

그토록 이 둘은 섞일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 본문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 앞에서 선택해야 한다.

어떤 것을 취할 것인가

순간마다 나는 무엇을 잡을 것인가.

 

두 말 할 것 없다.

세상 뭐라 해도,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

그 자에게 승리가 주어질 것이다.

 

내가 바로 지금 약속의 성취의 현장에 서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부르심의 달려갈 길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

하나님의 위대한 승리이자 성취를 믿음으로 기뻐하는 자

 

나는 오늘도 이 믿음을 선택하련다!


하나님! 세상은 거세지고 거세보이고. 그러나 말씀이 심겨진 자는 작고 작고 연약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은.. 세상을 이긴 믿음이 그 안에 있음을 알아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계속되는 믿음의 씨름이 있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나를 보는 것이냐,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와 세상을 보는 것이냐 이것입니다. 성령으로 이기게 해주십시오. 말씀으로 이기게 해주십시오. 믿음으로 이기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예수님을 생명으로 나타내는 가장 보배롭고 존귀한 삶으로 오늘도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관점으로 믿음으로 바라보며 누리며 전하는 하루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