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Numbers

민수기1장_절대주권의 역사에 절대믿음이 필요해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7. 01:39

그러니까, 벌써 애굽땅에서 나온지 2년이 지났다.

2년하고도 2달이 지났고

거기에 하루가 더 지났다.

 

아직 우리는 시내광야이다.

불뱀이 지나다니고, 뙤얕볕에 사람들이 쓰려져가는 그런 광야.

대체 여기에서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너무나 놀랄 일이지만

우리는 기이하게도 여기에서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가고 있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당연히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노예처럼 있어도, 거기에서 주는 고기국물 마시고 그래도 힐끔힐끔 애굽의 이쁜 아가씨들 쳐다보면서 누릴 것을 누렸지 않았겠는가.

실컷 후두루 맞고 나서도 마늘향이 섞인 고기국물 한 사발이면 그럭저럭 살만했다.

 

그러다가 어쩐일인지, 지금 꿈에도 꿈꿔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광야..

이 더운 뙤얕볕에,

그분이 말씀하시는대로 진을 폈다가 접었다가 하면서..

그분의 말씀대로 움직이는 새로운 삶에 접어든 것이다.


얼마나 어색한지.

그분이 주신 법이 얼마나 생소한지.

과연 이대로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당장 아멘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뙤약볕에 썩어져버릴 것이다.

 

그리고 오늘 회막에 모세가 들어가 하나님과 말씀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1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 회막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군대가 된다는 기겁할 소리였다.

내가 군사가 된다는 말은.. 내가 전쟁을 한다는 말 아닌가!

어쩌다가 내 인생이 이런 국면을 맞이했는지..

그러나 저러나 나는 하나님 그분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2절.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3절.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진영별로 계수하되

4절. 각 지파의 각 조상의 가문 우두머리 한 사람씩을 너희와 함께 하게 하라

 

그렇게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은 계수함을 받게 되었다.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서 남자의 수를 체크하는 매우 체계적인 계산법이었다.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수 있는 모든 자들..

 

그들을 ‘진영별로’

그리고 각 지파의 가문 우두머리 한 사람씩은 회중에서 부름을 받게 되어 조상 지파의 지휘관을 맞게 되었다.

16절. 그들은 회중에서 부름을 받은 자요 그 조상 지파의 지휘관으로서 이스라엘 종족들의 우두머리라


그리하여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지파별로 20세 이상의 남자가 계수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계수 되어졌다.

 

17절. 모세와 아론이 지명된 이 사람들을 데리고

18절. 둘째 달 첫째 날에 온 회중을 모으니 그들이 각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인 남자의 이름을 자기 계통별로 신고하매

1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가 시내 광야에서 그들을 계수하였더라

 


시내 광야에서의 기억은 잊지 못할 것이다.

아주 급하고 빠르게 지파의 우두머리이자 지휘관인자는 20세 이상의 남자를 모두 세어 돌아갔다.


이들이 얼마나 떨렸을까..

우리를 숫자를 세어간다니.. 온 진영에 이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을 것이고..

왜 20세 이상의 남자를 센단 말인가?

그것은 군인들과 싸운다는 말이 아닌가?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돌았을 것이다..

애굽의 장정들을 보았던 이들은, 이름을 듣도 알지도 못하는 가나안 땅이라는 어떤 곳에

쓰레빠 질질 끌고 광야에서 허덕거리는 이들이 싸워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콱 막혔을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짧은 시간에 왠 일이 이렇게 많이 생긴담.

이렇게 많이 엄청난 일들이 펑펑 터진담.

 

애굽군사에게 쫓겨서 홍해를 건넌 것도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대 사건이었는데..

이제는 저 이름도 알지 못하는 어떤 나라에 건너가서 숟가락 들고 싸워야 할판이니..

 

어떤 자들은 승리의 노래를 부른 자도 있었을 테지만,

글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패배감에 젖어서.. 언제 자신이 호출될지를 기다리며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지 않았을까.

그저 자신이 노예로 지냈던 때를 그리워 하며 말이다.


그것은 그렇지만 하나님은 또 어떠신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일을 척척척척 진행해 가신다.

 

마치 이 세상에 모세 그 사람 오직 한 사람 있는 것처럼..

그렇게 모세와 일을 척척 진행해 가시는 것이다.

 

얼마나 빨리 일을 진행해 가시는가.

이것이 사람들에게 숙련이 되었는가, 이해가 되었는가.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었는가. 상관없이..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진행해 가시는 것.

 

그렇게 담대하시다.

 

나는 오늘 묵상을 하면서, 특별히 하나님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자신감’을 묵상하게 된다.

 

얼마나 자신있으신지.

이 사람들은 다리가 후들거릴텐데. 전혀 요동도 아니하시고 미동도 아니하시고.

‘너희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거야’ 하시는 것이다.

 

참, 사람의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다.

어떻게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꿈쩍도 안하신다.

너무 자신있으시다.

왜냐?

 

여기에서 한가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절대주권적’으로 이 일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 모든 일들의 결과를 알기에 여유롭게 볼 수 있다.

훗날, 여리고 전쟁에서도 그 이후에 사건마다 전쟁마다.. 하나님이 얼마나 세밀하게 개입하셔서 이들을 승리케 하시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자신 있으셨던 것이다.

 

처음부터 계획하셨고, 처음부터 당신이 직접 개입하실 것이고, 처음부터 끝까지를 주님이 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저 이 싸움은 자신 있으신 것이었다.

무조건 승리이기 때문에..

부름 받은 자의 자격이나 요건이 어떤지 조금도 상관없이.

(그렇지 않은가? 이 사람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노예출신들인지 읽는 우리는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런데 그런 자들 데리고 저 높은 성벽을 넘을 수 있다는 그 자신감!!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이 하신다는 그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절대주권의 역사.

바로 구원의 역사가 그러했다.

하나님이 태초부터 처음부터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고자 했던 그 역사를 어디 다른 데 맞기지 않으시고.. 철저히 스스로 다 준비하셨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역사로 이 모든 구원을 마련해 놓으신 것이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증언하시고, 마침내 아들을 보내어 주시기까지..

하나님은 이 모든 일들을 친히 주관하시고 인도하셨다.

그리고 완성하셨다.

 

모두 주님이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나에게 어떠한 태도가 필요한가?

바로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행하시는 구원을 보는 것!

그것을 믿음의 눈을 들어 보는 것!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행하시는 주님을 믿고 바라보는 것!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

나의 전부를 걸어 맡기고 신뢰하는 것!

 

마치 예수님도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신 그 것처럼..

나 또한,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그분을 의지하는 것!

바로 이것이 그분께 드리는 최고의 순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