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Numbers

민수기3장_고유의 길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7. 16:28

형들이 죽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이라고 했지만, 미리암 고모는 아버지가 늘상 우리 형제들에게

‘오호 고참 잘생긴 놈’

‘오호 고참 잘될 놈’

‘오호 고참 야무진 놈’

‘오호 고참 똑똑한 놈’

 

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우리 형제는

나답, 아비후, 그리고 나 엘르아살, 내 동생 이다말이다.

2절.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장자는 나답이요 다음은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니

 

우리는 아버지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고들 했다.

그 말은, 지금은 그 말에 장담할 수 없으며 또 확인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음, 간혹 미리암 고모의 눈빛을 볼 때면.. 참으로 안쓰럽다는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관없다. 나도 조금 어른스러워졌나보다.


내가 본 것은 늘상 찌는 듯한 더위였고.. 맛보았던 것이라고는 갓씨와 같이 피었던 약간 달콤한 그것. 만나 뿐이다. 간혹 불뱀과 전갈을 보았는데, 절대 가지고 놀면 안되는 것이라고 아버지께서 엄히 가르치셨다.

음. 내가 만지작 거리고 놀 수 있었던 것은, 모래로 만들어진 누런 바위들을 바라보며 어떤 바위가 더 크고 작은지, 더 작고 동그랗고 귀여운지.  어떤 바위가 형을 닮았는지.. 내가 마음에 드는 바위가 무엇인지. 바위의 얼굴이 사람의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든지.. 이런 것을 찾아내는 소소한 놀이 쯤이었다.

 

이 곳은 광야라고 했고,

간혹 우리 가족의 어른들은.. 애굽에서의 삶을 이야기하셨지만..

혹시나 누군가 들을까 조마조마한 눈빛이었다.

비밀작전을 펼치듯이 그렇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주고받으시곤 했는데, 애굽에서는 맛있는 다양한 것들도 많았고.. 흙도 보드라웠으며.. 비록 노역이 고되고 힘들기는 했어도 향신료나 마늘이나 부추나 가끔 한모금씩 맛 볼수 있는 고기국물은 정말 인생 중에 꼭 경험해보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많이 들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음, 살아계신 하나님 이야기.


특히 우리 모세 삼촌의 이야기는 특별했다.

사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만.. 그래도 우리가 그 맛있는 것들을 다 물리치고 광야에 있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었다.

비밀스럽게 애굽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어른들도 이 대목에 와서는 일부러 누구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출애굽 사건의 이야기다.

자 이쯤에서, 나의 더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마치기로 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형들이 죽었다.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

형들이 죽었다.

 

시내 광야였고, 나이가 훨씬 많은 형님들 둘은.

평소에 그들을 보아하면 장난이었겠거니 혹은, 귀찮았거니 혹은.. 호기심이었겠거니 싶었다만

4절.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어 자식이 없었으며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의 아버지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다른 불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게된다면.. 장난을 할 수 없는 나이였기도 했을 것이다.

 

여하튼 형들은 죽었다.

다른 불로 인해서.

그리고 나와 동생은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여호와를 섬긴다는 것.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운명에 대해서. 거부할 수 없는 이 운명에 대한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들은 시내 산에서 태어난 아론의 자녀들이다.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이들은 광야에서 태어났고. 광야 외에 다른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 이들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다

 

3절. 이는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이며 그들은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 받은 제사장들이라

 

태어날 때부터

자라날 때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으리라.

 

운명적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결정되어져 있었다.

형의 죽음 앞에서, 인간적인 어리광이 통하지 않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

제사장이라는 것

구별된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그들과 그들의 민족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명이었는지도 알았을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자면, 이들이 얼마나.. 이 짐이 무거웠을까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이 많은 200만명의 백성들 앞에서 제사장 직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고 버거운 일이었을 터.

여하튼 이 형제들은 자신에게 일생동안 맡겨지고 주어진 사명을 감당 해내야 했다.

그것이 유일하게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몫이며 길이었다.


나는 오늘 묵상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각자에게 정해진 길.. 에 대해서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길로 다 같이 뛰어가지만, 사실 각 사람에게는 고유한 부르심이 있다.

먼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왕과 같은 제사장’의 부르심이 부어진다.

그리고 각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고유하게 부어주신 부르심이 있기 마련이다.

 

오직 그 사람에게만 주어진 길

오직 그 사람에게만 주어진 열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을 똑같이 창조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각 사람을 질서안에서 각자에게 꼭 맞는 옷과 직임을 부여해 주셨다.

 

어떤 사람은 농부로 어떤 사람은 상인으로 정치인으로 기업가로.. 모든 사람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각자의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완성해가도록.

가히 직업은 그 부르심이 나타난 바요,

원래 부르심은 그 마음 안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겨놓은 바 일 것이다.

 

각 사람안의 부르심..

오직 주어진 그 길..

꼭 그 사람에게 맞는 그 옷..


 

나는 생각해본다.

만약 오늘 주인공인 엘르아살이 이 부르심이 싫고 무섭고 버거워서 도망가고만 싶어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삶일까.

얼마나 비참하고도 고통스러운 삶일까.

 

그러나 만약, 엘르아살이 이 삶을 믿음으로 받는다면..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일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받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그런 믿음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일 테니까.

 


 

요즘의 나의 마음을 돌아본다.

참 많이 이 사람 저 사람과 나를 비교했던 것 같다.

저 사람은 저것이 있구나, 저 사람은 저것이 있구나.. 나에게는 뭐가 있지?

나는 왜 안되지? 나는 지금 잘 가고 있나?

나 이 길로 가는 것이 맞나? 다른 길이 있지는 않았을까?

이보다 더 좋은 길이 있었을 텐데..

만약 과거에 이렇게 했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지금쯤 이렇게 가고 있을 텐데..

 

이런 마음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내 마음을 요동하게만 할 뿐이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 공통된 룰로 적용할 수는 없다.

오직 그 사람에게만 주어진 길이 있다.

요 15장:4-5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성경은 말한다.

오직 하나님과 나 자신의 관계 속에서 오직 고유한 열매가 맺어지는 것임을 말이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 ‘참 열매’가 맺는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말이다.

열매가 영글지 않아 모르겠지만.. 나는 이 길로 가고 있다.

하나님 안에서 열매맺도록..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의 열매가 맺어지도록.. 나는 그 길로 가고 있다.

내게 맡겨주신 것들이 열매맺어가도록 치열하게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길이 맞는 길임을 다시 믿음으로 취한다.

오직 나에게 주어진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