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Numbers

민수기19장_The water of cleaning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7. 19:16

죽음과 사망의 냄새가 풍긴다.
어느 장막 안에서 살인이 벌어졌나.
들에서?
혹은 그냥 죽었거나. 그냥 죽었을리가.
살인이었겠지.

칼이 쥐어졌으니.
칼이 있었으니.
들은 아무도 보는 이가 없잖나? 일단 빨리 처리하기 좋고.
단번에 처리하기 좋지 않나.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였다.
그들은 선택받은 백성이었지만, 그것이 너무나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살기가 돌았고
잔인하게 누군가를 죽일 수 있었다.
미우면 죽이고 싶은 것이고
땡기면 간음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빼앗고 싶은 것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본성인 것이다.

나보다 더 많이 가지면 질투하고 미워하며 죽이고 싶은 본성이 들끓었던 것이 어찌 저 가나안 백성과 다를 것이 있단 말일까.
왜? 아담 이후에 사람들은 다 똑같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너무 잘 아셨다.



1) 시체를 만진 자
- 7일 부정할 것이다 (11)

2) 장막에서 사람이 죽었을 경우
- 장막에  들어가는 자는 7일 부정할 것이다 (14)
- 장막에 있는 자도 7일 부정하다 (14)
- 장막 안에 그릇까지도 부정하다 (14)

3) 들에서 칼에 죽은 자, 시체나, 사람의 무덤을 만진자(16)
- 들에서 칼에 죽은 자를 만진 사람
- 시체를 만진 사람
- 사람의 뼈를 만진 사람
- 죽은 사람의 무덤을 만진 사람

마치 공기로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듯이,
하나님께서는 그 '공간'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전부 '부정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정결케 하는 물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신다.

1- 일단 붉은 암송아지를 데려오라 (2)
-> 흠이 없고 온전하고 멍에를 메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2- 제사장 엘르아살은 '진영 밖'으로 그들을 끌어내야 한다 (3)

3- 자기 목전에서 송아지를 잡는다 (3)

4- 손가락에 피를 찍는다. (4)

5- 회막 앞에서 일곱번 뿌린다 (4)

6- 암소를 자기 목전에서 불사른다. (가죽과 고기와 똥까지) (5)

7-불사를 때에,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불가운데에 던진다 (6)

8- 제사장은 자기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 수 있다 (7) :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다.

9-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둔다. (9)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해 간직했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해둔다.
=> 이것이 '속죄제'이다.

이렇게 준비된 '재'에다가 '물을 섞어'
아니 물에다가 재를 섞어서..
(그것도 흐르는 물에다가 재를 넣어서 잿물이 되게 해서 우슬초로 찍어서 뿌리고... 몸을 씻고..)
그렇게 이 재를 '정결케 하는 물'로 사용하였다.

붉은 암송아지의 댓가가 치뤄졌다.
그리고 그 사망의 그림자는 사라졌다.


처음에는 복잡한 정결예식이라고 생각했는데 .
곱씹고 묵상을 해보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이스라엘 텐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말인가?

어떤 사람이 한 사람에게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그가 죽은 시체 무덤을 파버렸다.
그리고 다시 그 시체를 토막내어서 강물에 버려버렸다.

이런 일들은 흉흉한 마지막 때인 지금 이 시대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 아닌가?
너무 과한 상상인가?
죄인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다를게 뭐가 있을까.

들에서 칼로 사람을 죽인자나
그것을 만져 가져다가 더 찔러서 확인사살 한 자나.

'시체를 만졌다'라는 말은 정말 여러가지 의미를 포함했다.
이스라엘 백성도 얼마든지 잔인한 광기의 살인을 벌일 수 있고..
또 꼭 잔인하지 않다 할지라도. 그 죄성이 그대로 뭍어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붉은 암송아지를 생각해본다.
붉은 것이었다.
멍에를 한 번도 메 보지 않은. 순진하고도 순전한 눈을 꿈벅거리는 소.
흠도 없고 온전한 소를..

잔인하게 죽여야 했다.
소를 잡는다는 표현 안에 . 그 소의 발버둥치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래 그 소를 잡아야 했다.
눈을 찌르던 미간을 찌르던 심장을 관통하던.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던 그 소는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과 함께 재가 되어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그 소는....
그 살인의 광기가 있었던 공간마다
뿌려지고 뿌려지고 또 뿌려졌다.

그 공기가 전염되어져 가지 않도록..
우슬초에 찍혀져 뿌려지고 발라지고..

그렇게 정결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절.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

그럴 수 밖에.
그 죄악을 멈추지 않는다면.. 멈춰지지 않는다면 당연히 끊어질 수 밖에.
자멸하는 길로 달려갈 수 밖에.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수 밖에.

9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

속죄제.
죄를 대속하는 일이 이뤄져야만 했다.

그렇게 붉은 암송아지가 희생이 되었다.



사람들의 끔찍한 죄악과 온전하고 순전한 붉은 암송아지의 눈이 대비되어 오버랩 된다.
끔찍한 죄악에 들어가는 순전한 소.

이 붉은 암송아지는 흠도 없고 온전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아주 순전한 소였는데.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저들을 깨끗게 하는 잿물로서..



성경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죄를 씻어내는 속죄제는..
결코 아니라 할 수 없도록
내안에 들끓는 본성으로의 죄악과 그것을 대속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붉은 죽음을 생각나게 한다.

예수의 피..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피..
그 고결하신 분이 죽임을 당했다.
기꺼이.. 처참한 죽음을 당해주셨다.
그리고 가장 사망이 가득한 그 곳에 정결케 하는 물로서 저들을 부정에서 건져주셨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그리스도의 사랑
기꺼이 죽음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그리스도의 사랑
처참히 죽음으로서 재가 되어짐으로써

나 잡아먹고 너 살아라
생명 주시는
다시 살게 하시는

그 예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



하나님 다 몰라도 오늘 제가 알게 된 것은.. 그 예수의 피가 우리를 구속하신 그 사건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사건인지에 대해서였습니다. 예수의 피, 주문이 아니라.
당신이 당신 전부를 재가 되어지도록 쏟아내셔야만 했던 십자가의 사건으로 인해서 죄에서 건짐을 받게 된 것이라는 걸.. 온전하고도 순전한 당신이 완전한 재가 되어서 사망을 막아서는 제물이 되어주신 것을.. 주님 오늘도 제가 그 십자가 예수 , 예수의 피,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The water of cleaning 을 붙듭니다. 주여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죄악들을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뿌려주시고 발라주셔서.. 주여 이 피가 이 희생이 내 안에서 헛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그 은혜로만 말미암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