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땅에, 언어가 단 하나였을 때가 있었다.
말이 하나 이었기에,
어딜가나 소통이 전혀 문제가 없었던 때.
짝짝이 잘 맞았던지, 그들은 동방으로 움직이다가 '시날평지'에 도달해 거류하기로 결정했다.
1절.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절.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시날평지는 매우 비옥한 평원이었다. 유브라데 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남부 쪽의 평원이었다.
그들은 이런 저런 자신의 속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언가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자. 벽돌을 견고히 만들자! 돌 대신 벽돌을 만들어서 성읍과 탑을 건설하자!"
"그래서 우리가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는거야! 그럼 우리 이름이 내지겠지! 그럼 아무도 우리를 건들지 못할꺼야!
그럼 온 지면에 흩어지지 않을꺼야!"
참 야무진 생각같다며 스스로들을 격려하며 그렇게 뜻을 모았다.
바벨탑을 건설하기로.
2절.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3절.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수고와 노력과 리더쉽 ... 등등이 담겨진 작업인지 모르겠다.
하늘 끝까지 닿으려면, 참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야 했다.
벽돌을 견고히 구우려면 역청으로 진흙을 만들고 그것을 쌓고.. 나르고.. 옮기고 올리고 쌓고.
누구는 밥해다 주는 사람
누구는 물 길러주는 사람
모두가 한 마음으로 연합하여 올려야 하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벽돌 옮기다가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마음 중심의 동기는 잘 알지 못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해내야하는지.
왜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높여야만 했었는지..
여하튼,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기'때문이었다.
5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그리고 간단히 결정하셨다.
7절.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 마음에 타당치 않다!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단순하게 그 모임을 흩어버리셨다.
모임은 단번에 해체가 되어 버렸다.
8절.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바벨'이라고 했다.
혼란 혼잡.
말하자면, 뒤죽박죽이라는 뜻이다.
이 뒤죽박죽을 하나님께서 직접하셨다.
바벨은 바로 그런 뜻이었다.
9절.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왜 그들에게 '혼잡'이 되었어야 했나?
그들은, 정말 전심의 연합과 섬김과 최선으로 그렇게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왜 단번에 흩어졌어야 했나?
하늘에 닿기까지 탑을 만드는 '동기'때문이었다.
동기는.
다름 아닌 '두려움'이었다.
그들은 "흩어짐을 면하고" 싶었다.
3절. ....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 하였더니
흩어지는 것이 삶과 죽음을 가릴만큼 중요한 문제였던 사람들
그들의 내면 깊숙히 존재했던 '두려움'
그것은 하나님과 사이가 벌어져버린 죄된 인간 본성안에 잠재된 정서였다.
최초아담에게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정서.. 두려움.
두려움.
이 두려움이 하늘에 닿을 만큼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온갖 모든 최선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탑을 쌓을 수 있다.
이 두려움이..
하나님께서는 단번에 온 지면에 두려움을 흩으신다.
그리고 하나님만의 구원 역사를 이뤄가신다.
가장 연약해보이는 한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서..
두려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
그분 안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모든 자들의 동일한 정서이다.
하나님은 이 두려움이 동기가 된 모든 것을 흩어내길 원하신다.
왜?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히 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불행하게도, 이것이 깨어진 아담의 후손에게 잠재워진 기본 정서가 되어져 버렸다.
밥을 먹어도 두렵고, 병이 나으려고 약을 먹어도 두렵고, 친구를 만들어도 두렵고, 안만들어도 두렵고
이사를 가도 두렵고, 안가도 두렵고.. 새 직장을 가져도 두렵고, 안가져도 두렵고..
무엇을 하든 '두려움'에 휩싸여 일생을 종노릇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렸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그런 존재로 태어나 버렸다.
무엇을 해도 만족할 수 없고, 무엇을 해도 두려운 .... 한 얼음판 위에서 덜덜 떨고 있는 작은 소녀처럼..
일생을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원래 원형은 그렇게 만들지 않았어.
사자와 같이 독수리와 같은 존재로 만들었었어.
하나님의 마음 안에 절규가 들리는가?
나의 자녀들에게 잃어버린 형상을 찾아주고 싶은 하나님의 절규 말이다.
그래서 흩으신 것이다.
두려움으로 출발된 모든 것들을 .. 하나님은 꼴도 보기 싫으셨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다우신 방법을 말씀해주셨다.
두려움을 내어쫓는 유일한 길..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바로 온전한 사랑......
온전한 사랑이다..
온전한 사랑되신 하나님.
바로 하나님으로 가능하다는 것.
그분을 만남으로 두려움은 사라진다..
그래서 인류의 모든 대답은 하나님 사랑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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