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Genesis

창세기22장_ 헌신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Abigail_아비가일 2021. 2. 18. 15:19

<가나안 정복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출애굽 2세대들>

“그래서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됬어요?‘
“아... 진짜 더 궁금해진단 말이에요~ !! 제발제발제발요~~”

하품. 한번 쉬어주고.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마무리하고 싶건만.
아이들 등살에 이야기를 멈출 수가 없다아^^



우리는 지금 가나안 땅을 마주보고 서 있다.
우리 윗 대의 어무이 아부지는 모두 광야에서 돌아가셨다.
출애굽의 엄청난 영광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 나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광야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만나라는 것을 먹었고 (먹을만은 하지만 썩 맛있지는 않다.)
독사랑 전갈이 많은 곳이었는데, 가끔 물려 죽는 사람은 보았어도
엄청 자주 보지는 않았다. 꽤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2세대는. 가나안 땅 정복을 앞두고 서 있다.
구름.. 불. 살결처럼 가깝게 우리를 이끌어오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음. 내가 듣기론, 가나안 저들의 무기와 우리를 비교해봤을 때.....
그냥 오늘 숨쉬기를 포기해야 한다.
저들은 핵총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숟가락 들고 있는 꼴이다.

그나저나 나는 마음이 편안하다.
나 뿐 아니라 여기 대부분이 그런 것 같으다. (아닐 수도 있고)
친구 녀석은 어제 무서워서 오줌을 지렸다고도 하지만.
대부분 그정도 긴장감은 있지 않은가?


여하튼, 우리는 가나안 정복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가나안 정복에 앞서, 위대하신 모세 지도자의 손끝을 통해 전해주고 싶으셨던 러브레터를 듣게 하신다.

그리고 오늘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는 내용까지 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함이었다.

그냥 저냥 살다가 스러지는 이슬처럼 없어질 존재..를 만물의 신이라는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하셨다.


그것만으로 어깨가 으쓱해진다.
가나안 우쒸. 다죽었어.



그리고 지금은 나와 동네 아이들 다모아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는 장면을 읽고 있다.
눈이 감기게 피곤하긴 한데.
나도 사실 궁금해 . 헤헤.

어제 어디까지 했더라..............?



아 .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리아 산에 이르르게 되었다.


9절.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삭. 내 아들놈도 알고 있었을까.
모리아 산에 도착하기까지 이 녀석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이따금 노새한 나귀의 털그덕, 쩝쩝, 씩씩 대는 소리가 들릴 뿐이지. 터벅터벅 걸어가는 걸음 사이로 새어온 적막..

여하튼..
나는 제단을 쌓았다.
나무를 벌였다.
아들 이삭이는 아무 말 없이 제단 쌓는 일을 거들었다.

나무 벌여놓는 사이로 스쳐지나가듯 보이는, 내 아들의 경직된 표정.
그리고 떨리는 다리.가 보인다. 아니 내가 잘 못 본 것일 수도 있겠어.
아들이 상체를 굽히고 땅에 있는 나무를 안아 일어서려 하는 그 때.
나는 뒤에서 아들의 두 팔을 낙아채 결박했다. 그대로 바닦에 눕혔고, 팔과 다리를 준비한 끈으로 묶었다.

그리고 .. 내 아들을 들어 제단 나무 위에 올려놓았다.


9절.......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내 아들 이삭은. 아무 저항을 하지 않았다.
모든 힘을 다 빼고,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렇게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엷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 아들 이삭.. 그의 눈에서 소리없이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뺨에.. 그리고 제단 나무를 적시는 그 때에,

칼을 잡았다.
그리고 힘껏 팔을 올렸다.
“으아!!!!!!!!!!!!!!!!”


10절.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아브라함아!!!!!!!!!!!아브라함아!!!!!!!!!!”
다급한 소리가 나를 멈춰세웠다.
하늘에서부터 부르는 소리였다.


11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얼마나 다급한 소리였던지. 1초만 늦었어도. 나는 벌서 힘껏 내 아들을 찍어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음성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12절.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말라!!


“ 네가 네 아들 네 독자 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내 뺨을 타고 소리없이 눈물이 흐른다.

눈을 들어보니, 숫양이 있었다.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
그리고 아들의 결박을 풀고.. 숫양을 잡았다.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다..

하나님께서, 이 번제를 정말.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명 방금전까지 존속살인이 일어날 뻔한 말도 안되는 이해불가한 무지막지한 사건이 바로 앞전에 마무리되었는데. haha.
어찌하여 이럴 수 있는고?

하나님께서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기뻐하셨다.
나도..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내 아들도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기뻤다..
내 마음을 다 드린 기쁨..
세상 누구도 모르지만. 나와 하나님은 안다..


방금 있었던 이 일은 , 내가 나를 하나님께 던진 일이었던 것임을..


하나님. 그분 경외함‘에 대한 과목 A++++++++++
아, 그것을 하나님이 인정해주셨다..
아. 진짜 기쁘다.
그니까. 진짜. 뭐야. 엄청 기쁘다.
경외함의 기쁨.




사실 조금만 해석을 달리하면, 희대의 존속살인인데.
그니까. 아들을 잡는다는 것.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찔러 죽이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확하지는 않다만.. 제사를 드린다는 것이.
가죽을 벗기고, 기름을 분리하고, 부위별로 잘라서 태울 것은 태우고 버릴 것은 버리고. 이런 과정들이 있지 않은가?

만약 아브라함이 진짜 진실로 거짓 아닌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고 가정한다면 (오늘 본문을 보면 그는 정말 그러했던 것 같다.) 아마 아들을 그렇게 제사로 드릴 것에 대해서 머릿 속에 그리지 않았었을까?

나 . 나라고 여길만큼 사랑했던 독자. 이삭을 제단에 드리라니
이만큼 잔인하고 끔찍한 명령이 어딨겠어. 정말로.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것에 순종하고 있다.


아무말 없이. 자신의 의지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정말 이해되지 않지만. 또 달리 시선을 바꾸어 본다면,


하나님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된 자에게..는 이런 이성을 뛰어넘는 액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초월할 만큼. 하나님 그분은 정말 선하시고, 그분은 만주의 주 이신 분.
그분의 마음의 중심엔, 정말 끔찍한 제사를 받고 싶으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마음의 ‘중심’을 보고 싶으신 분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간의 모든 삶의 경험을 통하여. 그래 하나님은 정말 내 마음을 원하시는 분이야.. 하는 '앎' 말이다.


‘헌신’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부터 말이다.


그분의 선하심.. 광대하심. 온 우주를 통치하심. 그분의 크심.. 인자하심. 신실하심. 나에 대한 계획이 늘 선하시다는 늘 사랑이시라는 것 등에 대해서 알게될 때에,


그분의 영원한 뜻 안에 자신을 던지게 되어지는 것을.

 

애씀으로, 노력으로, 나의 의지가 아닌. 그분을 알 수록 되어지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