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세 절세 미인 아내 사라가. 세상을 떠났다.
1절.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헷수라
그녀의 사명을 다했다.
믿음의 롤러코스터를 평생 함께 했던 그녀... 결국 이삭이를 안겨주고. 당신의 사명을 마친 후.
그렇게 먼저 내 곁을 떠났다.
지금, 이곳은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 헤브론 . 곧 기럇야르바라고도 하는 곳.
이곳에서 그녀가 떠나갔다.
2절.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울다울다.
생각난 것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헷 족속. 철기로 무장했다던 막강 세력, 그 힛타이트 족속들의 문을 두드렸다.
3절.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 나는 거류자요 나는 당신들 중의 나그네요. 내게 당신들 소유지중 매장지를 주어, 내 아내를 장사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
4절.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그들은 나를 ‘주’라고 하며. 내게 기꺼이 매장지를 거저 주겠다고 했다.
“내 주여 들으소서 .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소서. ”
6절.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여러번 말이 오갔다.
그들은 매장지를 그냥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거저 준다 할수록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헷 족속 주민들을 향해 몸을 굽혔다.
7절.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12절.아브라함이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굴 안에 굴이 또 있어 묘실로 쓰기에 적합했던, ‘이중의 굴’이란 뜻의 ‘막벨라 굴’을 달라고 하였다.
모두가 듣는 앞에서.
13절. 그 땅의 백성이 듣는데서.......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은 사백 세겔이었다.
‘연합, 동맹’ 이란 뜻을 가진 세계 최고의 성읍 ‘헤브론’에 위치한 ‘막벨라굴’
그리고 곧장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주었다.
이로써.
18절.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절.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
때론 약속의 말씀을 가진 사람의 행동은 의아하기도 하다.
나도 ‘약속언약’의 관점. 개념이 생기지 않았을 때에는. 왜 굳이 돈을 내면서 이 굴을 사나...
그냥 거저 받으면 되지. 하는 생각이 늘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오늘 굳이 가나안 땅의 막벨라 굴을 구입한 것은.
훗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에서 객이되어 400년간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해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돌아올 것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그는 정말 믿고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창시자로서. 그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조상이 묻힌 땅으로 후손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굳이 가족 묘실을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확증하여 구입한 것이다.
약속을 굳게 믿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그대로 투영해주는 장면이다.
땅의 일부를 소유한 정도가 아니라.
가족사의 약속의 언약이 확증되고 도장찍히는 장면.
그래서 결국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햇던 것...
어느새 아브라함이 ‘사명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깊은 ‘존재적 부르심’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사명적 존재’가 된다.
세상의 방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렇게 막벨라 구입을 구입하는.
아브라함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사명적 존재로서의 반응이었다.
여기서 잘먹고 잘사는 것 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는 것.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이 어느새 그에게 더 중요해졌다.
그것이 더 커보일 정도로.
아브라함 그의 가슴 깊숙이, 하나님의 뜻과 꿈이 담겨져 버렸다..
깊은 존재적 부르심은
깊은 사명적 부르심의 초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하나님과 오늘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깊고 진한 존재적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것은 깊은 사명적 부르심의 관계로 나타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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