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Genesis

창세기29장_큰 산을 보라

Abigail_아비가일 2021. 8. 17. 15:13


삼촌 라반의 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리 크다 하다해도 종들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아무리 넓다 해도 보기 싫은 얼굴 일주일에 한번은 마주치지 않았겠는가.



'대궐 같은 집에 살아서 차라리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네 정말 너무해.'

매일, 내 남편이기도 한 야곱은 동생 라헬의 텐트에서 나왔다.
그리고 매일
둘은 팔짱을 끼고 산책을 다녔다.

'산책을 갈라면 멀리 좀 가지.'

라헬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며
야곱의 그 친절과 배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그 둘의 러브스토리에.
나는 어디에도 낄 자리가 없었다..

창29: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20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몇일 같이 여겼더라
30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맨 처음부터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했다.
마치 나는 그 둘의 러브스토리에 끼인 돌 같이.

이미 결혼 한 몸이라, 빠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끼지도 못하고
운명을 바꾸지도 못하고

동생 레아와 야곱의 질타의 눈초리를 받는 인생이어야 했다.
‘언니, 눈치 것 비켜줘’

아무리 인심좋고 마음좋은 언니라 해도.
이런 동생이 야속하다.
정말 밉다..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는.
31절.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하나님께서 나의 태의 문을 여셨다.

첫째 아들 르우벤 .
이름은 ‘보라! 아들이라!’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셧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32절)의 뜻이었다.

남편과 라헬과 모든 종들을 포함한 자들에게, 내 수치를 가리우기 위해 소리치고 싶었다!
보라!!! 아들이다!!!!

둘째 아들 시므온
이름은 ‘들으심’이란 뜻이다.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또 다시, 하나님 내편이라고 도장을 찍고 싶었다.
하나님이 이 아들도 주셨다!

셋째 아들 레위
뜻은 연합함이란 뜻이다.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의 뜻이다...

그리고 넷째아들은 유다
뜻은 찬송함이다.
내가 이제는....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한 여인의 내면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당시 고대근동에서는 아이가 탄생할 때의 환경이나 정서를 이름으로 표현하곤 했다. 이름을 짓는 자의 성품이나 경험에 따라서 이름이 지어지곤 했는데..

이를 볼테면 , 레아의 마음 안에 어떤 내면의 변화가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레아? 그녀도 야곱을 사랑했다.
첫째아들부터 셋째 아들까지의 이름 속에 담겨진 간절한 소원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도 내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뚝뚝 뭍어 난다.

그녀 안에 얼마나 많은 치열한 내면 싸움이 있었는지 지레 짐작할 수 있다.
라헬과 비교되는 자신의 모습
라헬을 온통 사랑하는 남편

그 둘에게 자신은 쓸모 없는 존재 같은 버려진 느낌.
을 채워보고자,
온통 남편, 남편, 남편 사랑하던 그녀가.

시므온을 낳을 때부터
찬송하리로다!로 바뀌게된다.

그녀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찬송하리로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녀의 마음이 이기고 기쁨으로 변화되는 순간이었다.



다는 몰라도 라헬에게 빛이 임한 순간이었으리라.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 끝이나고
끝내 하나님 그분이 라헬을 이겨주신 참 승리의 순간이었으리라.

그 순간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내 뜻보다 분명하고 선명하게 믿어지고 손에 잡혀지는 순간.

내 일상의 죽고사는 문제가.
실제 안개와 같이 아무것도 아니였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신 순간.
그 순간에 피조물은 조물주를 찬양하게 된다.



고대근동의 밧단아람의 지역에서,
애 낳고 못 낳고, 사랑받고 사랑받지 못하고 하는 아주 일상의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를 들여다볼테면. 이것이 과연 인류 구원 역사와 무슨 상관이 있겠냐만은

하나님의 손에 닿기만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사자는 그 문제에 깊이 거하고 있어서 큰 산이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큰 산을 볼 눈이 생기게 된다면,
이 문제는 사실 아무 문제가 아니였음을 깨닫게 된다.

뿐더러,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경륜을 보게된다.



사랑받지 못한 여인 레아.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면

애를 낳고 못낳고
사랑으로 인해 시기하고 미워하고의 일상이 끝이 아닌,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탄생하는 놀라운 역사의 한 복판에 레아가 있음을 보게 된다.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신약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로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신부된 교회로 재탄생하는 그 놀라운 일에 레아가 쓰임받고 있다.

본인은 알 수 없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