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Genesis

창세기30장_믿음으로 누릴 오늘의 완성된 삶

Abigail_아비가일 2021. 8. 17. 15:17


#. 라헬편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없는 라헬.

'언니 레아는 순풍순풍 애도 잘 낳는고만.
언니 배가 불러올 때마다, 저 만족한 표정 . .'

뵈기 싫다.



고대사회에서는 ‘아이를 낳는다’= 하나님의 복 주심과 즉각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자라고,
낙인 찍혀야 해?
내가?
나 라헬이?'

'내 종들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왠지 나를 하대하는 것 같아.'

'야곱은 나를 훨씬 사랑하는데....
정말 내가 저주를 받은 것일까.
하나님께 미움을 산 것일까??'

'그러나 저러나,
언니 배가 저렇게 불러오는거 싫어!!! 너무 싫어!!!!
나도 아이 갖고 싶어!!!!
무시 당하기 싫어!!!!'

1절.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그렇게 라헬은 야곱에게 자신의 몸종인 빌하를 준다.
고대 근동에서는 첩을 통해서 태어나는 자녀를 본 부인의 자녀로 여겨지는 관습이 있었다. 그래서 가문의 계보가 이어지게 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라헬은 몸종 빌하를
레아는 자신의 몸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한다.

 



#. 레아 편

출산이 멈추었다.
'이상하다. 하나님께서 내게 태의 문을 열어주셨었는데....
여기서 출산이 멈추면 저 여우같은 라헬에게 질 것 같아.'

그래서.
9절.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이렇게 경쟁은 계속되었다..
애놓기 경쟁.



이렇게 이제 남편이란 온데간데 없고
두 여자의 피터지는 시기 경쟁 끝에,
야곱의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계속되었다.

단: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6)
납달리 :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8)
갓: 복되도다 (11)
아셀: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13)
잇사갈: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19)
스블론: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21)
디나: 딸
*요셉: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도다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우너하노라 (24)_라헬의 아들




아이 낳기 전쟁.이 정말 치열하다.
언니 동생 사이에 있었던 치열한 신경전......
아. 비극이다.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이름을 짓는 자의 성품이나 경험이 반영된다고 했는데,
아이의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라헬과 레아가 당시 어떤 마음이었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은
억울함
호소
경쟁
이겼다
뺏고 빼앗음
이기심

등이다.

심지어 마지막에 요셉을 낳은 라헬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여호와는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들을 가지면서, 또 다른 아들을 가져야 만족할 것 같은...

인간의 탐. 심

정말 끝도 없는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볼테면
죄된 인간이 얼마나 소망 없는가..를 다시 보게된다.

친 언니 동생이라 할지라도 서로 죽고 죽이는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
내가 밟고 올라가야 자신의 존재감이 확증될 것 같은 그들의 마음에는
심지어 아이들까지 이용하여, 자신의 만족을 채우려 한다.
‘남’을 위한 무엇이 없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
내가 수치스럽게 보이는가.
내 이름에 먹이 칠해지는가. (그렇다면 견딜 수 없어)
눈에 보기에 내가 더 많이 가졌는가. 그래서 내가 어깨좀 피고 다니는가.



재미있게도 경쟁과 시기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공평하신 사랑은 계속된다.
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끝도 없다 생각했다.
인간의 탐욕. 짖밟고 올라서야 하는 죄된 본성은..
이제 사랑하는 남편도 눈에 보이지 않고, 그 남편을 통해 내가 저 동생을 (or언니를) 이겨버려야 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어느새 야곱이 뒷전에 밀려 둘 사이에 끼어버렸다.)

언제 만족이 되겠는가?
있을 수가 없다.
아이를 낳으면서도 또 다른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무저갱 같은 인간의 마음...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표현한다.

누구도 예외없이,
모든 이들을
자신의 탐심에 자신이 갖혀버리는.
스스로의 감옥에 갖혀서 나도 남도 보지 못하는 맹인 된 자들이라고 진단한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이미 풍성한 모든 것이 허락되어 있어도
고아처럼 전전긍긍하며 구걸하는 고아과 과부와 객과 같은 자들..

이런 자들에게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불쌍히 여겨주셔서.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핏값을 치루시고
당신의 나라로 초대해주셨다

이 나라는 모든 것이 풍족한 나라이다.
이 곳에서 마음껏 누리라고 하신다.
죄인의 옷을 벗고 신부의 옷으로
탐심의 모든 마음에 할례를 받아, 이제 말씀이 새겨진 새 마음으로.

나가 아닌 하나님과 이웃이 되어버리는 그 나라로 초대하셨다.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삶을 살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인 것 같지만,
아니! 차원이 다른 삶이 있다.

그것은 예수 생명의 삶이다.
모두가 똑같이 아직 육체의 옷을 입고 있어서, 자신을 부인하는 믿음의 싸움이 죽을 때까지 계속 되겠지만,

임마누엘하셔서 함께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이미 우리를 그의 성전 삼으심으로 인해

차원이 다른 삶을 허락해주셨다!
비슷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삶!
차원이 다른 삶.!

관심이 오직 하나님, 그리고 이웃인 삶.
그리고 십자가 복음인 삶!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는 삶!

오늘도 이 삶을 믿음으로 받는다.
이 은혜를 이미 2000년 전 십자가에서 완성된 것임을 믿음으로 취한다.
그리고 기쁨으로 예배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