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이야기
그리고 다말.
끈적하고
복잡한 이야기.
음... 아니?
애굽에 팔려간 요셉에게서 잠시 눈을 돌려.
그의 형 ‘유다’에게로 성경은 시선이 옮겨진다.
유다지파에서 예수님이 나오시긴 했지만, 유다는 그리 유쾌하고 밝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유다는 ‘히라’와 가까이 지냈다.
‘가나안’의 성읍 아둘람 사람 히라...
칙칙하다.
그리고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그리고 끈적하다.
이것이 유다였다.
정직하게 순결을 지키고 살면서 고난받은 요셉과는 너무 비교된다고나 할까?
1절.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절.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여하튼.
유다의 첫째아들은 ‘엘’이었다.
그리고 둘재는 ‘오난’
셋째 막내 귀염둥이는 ‘셀라’.
이미 첫째아들은 장성하여 혼인할 때가 되었다. 참해보이는 아가씨를 데려왔는데. 그 여인의 이름은 ‘다말’이었다.
왜?
자꾸 사람이 죽어나가는지.
이유는 명확히 알수 없지만.
장자 ‘엘’이 죽었다.
6절. 유다 장자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계보를 이어야 하는데.......
유대에 특별한 민족적 관습이 있었는데. 바로 룻기에 나오는 ‘계대결혼’의 관습이다.
간단히 말하면. 죽은 형의 아우가 과부가 된 형수와 결혼하여, 그녀가 자녀를 낳을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지만... 기업을 끊기지 않게 하는 유대민족의 특별한 관습이었다.
맏아들.. 이 죽었으니.
"동생. 오난. 너가 형수에게 들어가라"
그러나 오난도 형에게 씨를 주지 않으려 땅에 설정을 한다.
9절.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 갓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지독한 이기심.....
내 상속을 챙기기 위한 그 이기심은 ... 죽음을 가지고 오게 된다.
10절.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 저 며느리 다말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쟤한테만 가면 아들들이 다 죽는단 말이야.”
유다는 다말을 친정집으로 보낸다.
셀라가 장성하면 주겠다는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는.......
‘셀라가 장성했어. 셀라가...’
‘그런데 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말은 온통 아들 생각 뿐이었다.
아들....
기업을 이을 아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상식을 초월한 결정을 하게 되는데......
뒷 이야기는 다말이 창녀로 둔갑하여 유다를 속이고,
유다가 자신에게 들어오게 한다.
결국 유다는 다말이 행음했다며 분개하지만. 그것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며.
‘그녀가 옳았다’ 라고 인정하게 된다.
다말에게서 두 쌍태가 나오는데.. 둘째 아이 ‘베레스’가 먼저 나오게 되고. 이 베레스를 통해 메시야 족보가 이어지게 된다.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나온 아이 ‘베레스’
정욕을 채우고 싶었던 시아버지와
창녀의 모습으로 변장했던 며느리 이야기...
아.
이 끈적하고 추한 이야기를.
성경은 그대로 담고 있다.
성경은 인간의 추함에 대해서 덮어두거나.. 포장해 주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그 모든 포장을 거침없이 벗겨내고..
너희 이런 존재야. 여과없이 직면하게 해준다.
뭐가 잘난게 있나?
내가 좀 입고. 좀 등도 따습고 배도 불르고 잘 살고 있어서.
아 내가 뭔가 된 것 같아 보이는가.
NO~ 전혀.
모든 사람이 다 포장과 껍데기를 벗겨놓고 나면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는... 가장 챙피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그러한 존재들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죄인들 사이에서... 메시야의 족보를 이어가 주신 것이다.
어떻게? 이 스토리에서 족보가 이어질 수 있었지?
상식을 초월한 다말의 과감한 행동은
유다의 대를 이어갈 자손이 없는 상태로부터 다말이 구해주었다고 ‘구속사적 고엘 신학 사상’이라고 한다.
유다지파의 창시자인 유다에게 대가 끊길 위험에.. 다말의 행동은 ‘대를 잇기 위함’이었고.
아브라함과 언약으로 보증한 그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다말을 사용하셨다고 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말의 상식을 초월한 결심으로 인해 유다가 예수의 선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묵상을 하며,
하나님의 언약..
언약을 향한 다말의 결정.
족보를 이어야 한다는 한 여인의 작은 선택..
그리고 그것까지도 품어내는 십자가의 넓은 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가 스스로 잘났다 말할 수 있나?
유다와 다말 이야기를 보며
스스로 양심에 거리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나?
아무리 포장하고 합리화를 한다고 해도...
이 이야기에서 벗어날 존재가 어디있나?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죄된 존재..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거리낌 없이 행하지만,
며느리의 행음은 불태워 죽여야 하는 죄된 존재..
이 추함에 .
나 떳떳해 라고 말할 자가 누가 있나?
그런데 정말 기가막히게 놀라운 것은.
이 끈적하고 추한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상관 없이.
고요하게 흐르는 힘찬 강물처럼
당신의 언약을 성취하시고 구원 역사를 이뤄가신다.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과감한지 묵상하게 되었다.
다말...을 계보에 끼워넣어주시는 과격한 사랑...
유다를 통해 메시야의 족보를 이어주시는 사랑.
이 과감하고 과격한 사랑 앞에..
십자가가 품지 못할 범위가 어디 있나?
생각하게 된다.
어디까지 떨어져있던.
어디까지.. 망가져있던
상관없이.
하나님은 오늘. 너 그 자리에서도. 난 구원할 능력 있어.
구원해 낼 사랑의 품이 이렇게 넓어!
말씀하시는 그 말씀 앞에 선다.
십자가는 정말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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