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 길지 않은 침묵이었다.
잠깐의 시간.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해오신 하나님께 묵도하며.
짧고도 속이 꽉찬 감사를 올려드렸다.
요셉의 마음은 경이에 차 있었다.
바로의 꿈은 너무 쉬웠고,
그 해답은 너무 간단했다.
요셉은 마치 가야할 길을 가야 하듯.
그 길이 너무 당연 하다는 듯.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주신 꿈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것이 바로의 꿈 해석이 아니라면?
바로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천에하나 만에하나 이러다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면?
이제까지 인생을 보았을 때, 그리 호락한 인생은 아니였는데. 옥에서 평생 살다 죽게 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압도할 만한 힘이 요셉에게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후회없음’이었다.
어쩌면 요셉은, 그간의 수 많은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진정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이분이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라는 인식
그리고 그분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인식 (설사 그것이 오해를 사서 옥에 갖힌다 할 지라도 말이다)
그분이 나에게 대한 진짜 본심은 내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하신다는 인식.
그래 그분은 정말 선하시고 나를 향한 계획이 늘 선하신다는 인식이 생겼을 즘.
요셉은 마치 아기가 엄마 음성을 알아듣게 되듯이,
하나님의 싸인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큰 싸인부터 아주 세밀한 작은 싸인까지....이제는 마치, 엄마의 목소리를 알아듣듯이.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구나.를 알게 된 요셉은.
자신을 공격하는 수 많은 물음 앞에.
담담할 수 있었다.
또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오래토록 만난 연인사이같이, 그렇게 그분과 동행해왔기에,
하나님의 해석은 요셉에게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이 상황이 재미있기까지 했다.
‘그래,
하나님, 그분이 아신다.
그분은 선하시다.
그분은 이 상황을 주관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사랑하신다.
내 안에 떠오르는 꿈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설사 틀려서 다시 옥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분의 뜻에 순종한 것이기에
후회가 없다!'
요셉의 이 마음은 정말이지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시냇물이 강물이 되고, 강물이 바다가 되듯.
그렇게 자신의 자연스러운 반응에 대해
요셉은 그 침묵의 시간동안
짧고도 속이 꽉찬 감사를 올려드렸다.
그래.
요셉의 마음은 경이에 차 있었다.
“바로의 꿈은 이것입니다”
“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입니다.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소는 7년이요 동풍이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입니다........” (25-28절)
“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겟습니다.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 것입니다. 애굽 땅의 풍년을 잊어버릴만큼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할 것입니다. 후에 든 흉년이 너무 심할 것이기에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30,31절)
요셉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속히 행하실 것입니다!!” (32절)
“바로시여! 이제 명철있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소서! 바로께서는 또 이 같이 행하사 나라 안의 감독관들을 두소서!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소서! 그리고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소서!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이와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신다면 땅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33-36절)
요셉의 얼굴에 빛이 났다.
그리고 무언가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옥의 죄수였지만, 아니 옥의 죄수라는 이름이 그를 가둘 수 없어 보였다.
그는 매인 자였지만,
그 매임이 힘이 없어보였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안에 있는 것들은 빛이 되어 촤르르 쏟아져 내려오는 것 같았다.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거침 없이 말할 수 가 있을까. 저런 지혜를 쉼 없이 쏟아낼 수 있을까.
한 해 두 해. 억지로 짜낸 이야기가 아니었어.
압도할 힘으로 인한 터져나오는 고백이었어.
무르익고 무르익어
요셉이라는 사람 안에 담겨진 것들이 섞여 조화가 되어. 열매가 되어 나온 것 뿐이었어.
그 안에 있는 자들은. 동시에 가슴에 벅차오름을 느꼈다.
모두..
모두가 그러하였다.
37절.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절.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
39절.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누가 이 대목에서
요셉의 억울한 과거가 쓸모 없었다고 말할 수 가 있겠는가..
누가...
누가 그러할 수 있겠는가..
오늘 요셉이 쏟아낸 애굽 전체에 대한 대안은, 하루 이틀에 된 것이 아니였다.
묵혀둔 썩힌 마음이 끄집어내지고, 갈아지고 엎어지고. 거름이되고 꽃이되어지기까지..
그는 수 많은 눈물의 세월을 하나님 앞에 보내었을 것이다.
그 크신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기까지.
그 하나님은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주시는 분이라는 인식에서... 성품 자체가 선하신 분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기까지.
자신의 이러한 과거까지 받아주시나? 이 죄책감 저 죄책감. 형들에게 채색옷 가지고 잘난척했던 순간의 후회와 자책이 받아지기까지의 씨름.
옥에서의 지긋한 생활이 꽃이 되어지기까지 경험했던 하나님의 손길.
애굽의 정치 사회 경제 이야기를 들으며. 꿈꿔왔던 애굽의 미래? 아니. 히브리의 미래? 등.
스쳐가는 모든 생각까지 .. 하나님께 고하고 또 묻고 .. 그러다 지쳐 잠에 들었던 순간들..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기쁨의 찬송을 드렸던 순간들..
하나님 앞에서 보낸 요셉의 그 모든 순간들은
단 하나도 빠짐 없이 모두 아름다운 햋빛이자 거름이자 믈이되어
씨앗이 자라나. 열매가 되어졌다.
오늘 바로는 그 열매를 맛보았을 뿐.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요셉에게서 꽃피워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신뢰와 확신은.
요셉 한 사람 뿐 아니라. 애굽전체와 주변국까까지 책임지게 될 열매로 맺어지게 되었다.
요셉은 창세기 41장 32절에 자신있게 말한다.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라고.
마치 로마행을 떠나는 항해에서 광풍을 맞이하였을 때에
“여보시오 이중 누구도 목숨을 잃을 자가 없을 것이요”
라고 말했던 죄수 바울과 같이
이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자신의 지정의 모든 것이 일치되어진 요셉에게 터져나온 열매는
보석같이 빛났다.
하나님 앞에서의 한 사람의 씨름은
결코 헛되다 할 수 없다.
그것이 아무리 찌질하고 초라해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씨름이었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결론으로 결론 맺어졌다면.
하나님은 모든 과정까지도 빛으로 쓰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
인생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주어진 인생에 최고의 날들을 살아가는 한 날이 되어지려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뚫어지게 끊임없이 줄기차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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