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Genesis

창세기41장_2년의 시간동안

Abigail_아비가일 2021. 8. 18. 17:36


1절. 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
14절.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40: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들였고
40: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만 이년 후에”......

만 2년이 지났다.
세월은 참 빠르지만, 순간 순간은 참 느리다.

애굽에 온지 벌 써 12년인가.
13년인가.
한 해, 두 해 지날 때는 손을 꼽아가며 세었었는데...

지금은 정확하지 않다.

내 이름은 요셉.

이곳 애굽에서 30세를 맞았다.

애굽의 감옥에서...




나는
소년시절 꾸었던 그 2가지의 꿈은 늘 간직하고 있다.
분명 여러 볏단이 내게 절을 하는 꿈이었는데. 믿겨질지 모르겠지만,
그 꿈은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내겐 생생한 꿈이다.

내 인생을 내가 계획했던 적은 없다만,
그 꿈에 의한다면
적어도 지금 옥에 갇혀있다는 사실이 납득하기가 어렵다.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여기에 올만한 죄를 범한 적이 없었어.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어.
히브리 사람인데, 내가 왜 애굽의 옥에 갇혀있어야 하는것일까.
나는 히브리 땅에서도 끌려온 것이다.
채색옷이 죄였더라면... 죄였을까.
그것이 애굽의 옥에 갇힐만큼의 죄였던가.
그래. 형들의 미움을 살 수는 있겠지... 그러나,내가 그 일로 옥에 갇힐 일을 했었던가.
(창 40: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수 없는 눈물의 밤을 보냈다.
눈물 적실 베게도 없었다.

억울함. 분통함.
이해되지 않는 저주스러운 내 인생의 허무함
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여호와. 그분이 나와 함께 해주셨기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까지 느낄 수 있도록,
그분은 그렇게 숨결처럼 가깝게 내 곁에 계셨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평강함으로... 형통함으로...
‘승리’라는 단어를 내 인생에 안겨주셨다.



그러했던 것 같다.

여호와 하나님이 점차 나와 동행하시는 것이
마치 바닷물 속에 잠겨가는 것과도 같았다.

발목까지
무릎까지
허리까지..
가슴까지.....
목까지...
내 머리위에 잠김..
발이 땅에 닿지 않음,..

내 힘으로 내 원대로 갈 수 없음..
바다가 움직이는대로 움직여짐...

나는 그대로 인 것 같은데, 그분은 나를 점차 사로잡아가셨다.
나는 점차 없어지고.. 사라지고...
그분이 나와 함께하시는 형통이 남게되는 것.

이제 조금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조금은 말이다.



‘2년’ 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술 맡은 관원과 떡굽는 자의 꿈을 해몽해 주었던 때로부터..
해몽대로 되었던 시간..
바로에게 술 맡은 관원의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마저 수포로 돌아갔다.

금방 포기했어야 했는데,
옥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
이 절망과 후회의 구덩이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요동하여
술 맡은 관원에 대한 소망을 쉽게 놓을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2년..
다시 옥에서 보낸 시간들..

아주 천천히,
때론 급하게,
내 안의 찌꺼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처리되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주신 형통과 섞여있는 내 마음들은
수면위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원통함
분함
억울함
한탄스러움
나의 의
높아진 마음
낙심
.
.
.
.
고통스러웠지만 시원스럽기도 했다.



2년의 시간.

과정을 겪어가며,
내게 분명해진 것이 있었다.

아, 지금 고백하고자 하는 내 마음이 벅차오른다.
심장이 뛰는 감격이다.

나를 이렇게 인도해오신 그 분.
여호와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분은 정말 좋으신 분이시다..
그분의 바다는 넓다. 크다. 깊다.

이것이 끝이 아닐 것이다.
분명... 이보다 더 깊은 곳이 있을 거야.
내게 이러한 은혜를 주신 것이 .. 이토록 놀라운데, 그분은 끝도 없으신 분일 거야.



다 모르지만,
나는 지금 하늘을 걷고 있다.
다 표현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감옥이 천상이 되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나.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그 일이.. 지금 내게는 가능해졌다.

그래, 이 천상을 걷는 일은 더 높고 푸르르게 앞으로도 주욱 이어질테지.
혹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만
그 때에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요셉! 요셉 ! 거기 있습니까?”

급하게 누군가 나를 찾는다.

“요셉! 이제 바로 궁에서 너를 찾으러 올 거야. 바로께서 너를 찾으신대! 너의 꿈 해석을 듣고 싶어하신대! ”

무슨 일인지 정황을 살펴보아야겠다만,
나는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되었구나.
‘하나님 나의 고백을 받으셨구나..'

14절.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놓은지라..



만 2년 동안
요셉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요셉은 창세기 40장에 술 맡은 관원장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14절.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술 맡은 관원장의 한 마디라면,
나는 이 옥에서 나갈 수 있어.

라는 요셉의 한 마디 말 속에... 얼마나 많은 말이 담겨져 있는지.
어제 묵상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술 맡은 관원이 잘 될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꿈의 계시를 정확하게 풀어냈기 때문에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다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이라면 자신을 옥에서 나갈 수 있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은 없었던 요셉.

나는 옥에 갇힐 만한 일을 하지 않았어!
나는 히브리에서 끌려왔어!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

하는 억울함 원통 분노 .. 간절히 나가고 싶은 원함이 얽히고 섥혀서.

감옥안에서의 삶이 쉽지 않았겠다. 싶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간수장에게 은혜를 입는 등.. 참 많은 형통의 은혜를 입기는 했어도, 가슴 깊이 응어리진 요셉도 알지 못한 얽힌 마음을...

하나님 외에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만 2년 후에’
라는 1절의 구절이 눈에 띈다.

하나님은 2년이나 더 요셉을 감옥에 두신다.
술 맡은 관원의 한 마디면 나갈 수 있는 감옥이기도 한데. 하나님은 2년을 더 두신다.

2년 동안 요셉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의 마음 속에...

추측하건데. 요셉의 이러한 마음이 다뤄지지 않았을까.

하나님 방법 아닌 내 방법.
내 방법으로 인한 조급함.
분함 자기 의 내 뜻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모든 얽힌 마음에 대해서.

이제 ‘하나님은 선하시다!’ 하는 경륜이 마음에 새겨지도록...

그 마음까지 뛰어넘도록 하나님 일하시지 않으셨을까.



41장 뒤에보면, 꿈 해석을 위해 바로 앞에선 요셉의 모습에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어찌보면 당시에 목숨을 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꿈 해석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엇을텐데.
요셉은 아주 조금이 미동도 없이 “내 해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6절) 이라고 대답한다.

편안한 대답.. 이라.

또 요셉은 뒤에, 꿈해석 이후에 흉년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까지 담담하고도 확신있게 제안한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요셉을 붙드신 것이 확실하다만,
바로의 꿈에 대한 요셉의 해석은
40장의 술 맡은 관원과 떡굽는 자의 꿈 해석과는
약간 ‘다름’을 볼 수 있었다.

더 확신있고,
더 담대하고,
더 담담하고.
요동치 않는.. 믿음이

마치 하나님 앞에서 친구가 서로 얼굴을 대면하듯
편안하게. 대답하는 모습이었다.



2년의 시간.
그는 자신의 내면이 다뤄짐으로, 그렇게 하나님을 야다하여 알아갔나보다.

그분이 얼마나 선하신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