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Exodus

출애굽기15장_또 들려주시오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0. 20:13

기적이 기적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적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홍해를 지난 후.
옹기종기 모인 곳에서 어떤이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홍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실감나게 전개하곤 했다.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던지, 애굽군사들이 바다에 잠긴 대목에서는 여기저기 탄성이 질러지기도 했다.
이야기꾼의 이야기 전개가 실감나다만,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실감나는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을.
그 홍해를 건넌 주인공들인 것을..



출발이 가뿐했다.
그리고 힘이 넘쳤더랬다.
미리암과 여인들의 소고를 잡고 찬양하며 추었더 춤도 내내 화제에 오르고는 했다.
다들 얼마나 흥에 겨웠었던지.
이것이 모두 실제였다오. 영화가 아닌 실제라오.


그 흥분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떠들석 거리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모세는 수르 광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흘길이었다.
광야에서의 사흘길, 수르광야.

22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광야에서의 사흘길은 어떤 곳일까..?
어떤 이들은 하룻길은 고사하고 1-2시간만 있어도 진이 다 빠진다고들 하던데.

광야에서의 사흘길은,
흥분되었던 모든 것들이 다 영원한 과거로 던져질만한 그런 곳이었나보다.

'마라'에 도착했다.
그리고 물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시간도 견디기 어려운 뙤양볕의 광야를 3일을 걸어왔으니. 지칠대로 지친 백성들은
마라에 발견한 물에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던 것 이다.

그리고 곧장 그 물을 토해내었다.
23절.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원망이 쏟아져나왔다.
분통이 터져나왔다.
이렇게 죽일 것인가.
이렇게 죽는 것인가.
홍해를 건너면 뭐하나. 물이 없는데.
아무것도 없어.
사람이 물이 없으면 살수 있나?
오~ 가만보니 홍해에서 직접 애굽군사로 인해 죽이지 않고
이리로 데려와서 죽이려고 했던 것이고만? 이제야 자네의 속셈을 알았네!

어쩐지.. 그렇게 비용을 많이 쓰더라니.
어이 그래, 바다에 수장되어 죽는 바에, 광야에서 목말라서 타죽는 것이 더 통쾌하단 말인가?


있는말 없는말 쏟아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들이. 오직 모세에게 쏟아졌다.
24절.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그리고 모세는 여호와께 엎드려졌다.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가르키셨다.
그리고 모세는 그 나무를 물에 던졌다.
그렇게 물이 달게 되었다.
놀라운 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그렇게 하나님은 이 백성에게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내 법도를 잘 지키면, 애굽사람에게 내린 질병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6절)

하나님 이 말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으셨다.
나.
치료하는 하나님이야.

그리고
곧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를 발견케 된다.

오아시스..
이들이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는 그러한 곳이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그 물 곁에 장막을 치게 되었다.
27절.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노라면..
마치, 찌들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애굽에 절어있는 듯한 그런 것 말이다.



간혹, 험악한? 곳에서 가게 되면 생활고에 눌려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미간이 잔뜩 찌뿌러져있고, 기쁨과 감사를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조여진 심장 같은 표정.. 소망도 기대도 없는 그런 표정 말이다.
어른일수록 그런 표정을 보고는 한다.

오늘 이스라엘이 좀 그렇게 보였다.
방금 홍해의 그 어마어마한 기적을 보았다하더라도, 그것을 가슴에 담을 수 없는. 그런 마음 말이다.

아무리 좋은 것을 주고
좋은 것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어도

그것을 가슴에 담을 수 없는 것은.
애굽이라는 세상의 거짓말에 하도 찌들어서 일 것이다.

거짓이 너무 익숙해져서,
거짓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

옛자아가 너무 친숙해서
옛자아가 더 잘 맞는 옷인 사람들..



나는 오늘 출애굽기 15장을 묵상하면서,
그 거짓 옷들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본다..

430년 애굽 종살이가 어떻게 한번에 벗겨지겠는가?
아니, 아담 이후로 줄곳 죄된 본성을 따라 살아온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이 .. 단번의 기적으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아니셨을까?

"나 치료하는 하나님이야"
하시며, 오아시스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이때에는 어푸어푸 오직 목마른 목을 축이며,
그렇게 선하심을 경험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고 있었을까.



마치 못듣는 아이에게 귀머거리 아이에게 말씀하시듯.
그렇게 하나님의 열심은 오늘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손을 뻗치고 있었다.

오아시스처럼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어떻게 내가 이 사랑을 알아들었나? 신기할 따름이다.
죄에 찌들어 병들어 있는 자에게, 먼저 찾아와 당신의 선하심을 보이시고
성령으로 당신을 계시하셔서
오직 그리스도로 구속함 얻어
하늘을 사모하게 하신 이 은혜는
하나님의 전능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겠다.



이 찬송이 생각난다.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말해주시오
나 밝히 알아듣게 또 들려주시오
나같은 사람 위해 주 보혈 흘렸네
나 알아듣기 쉽게 또 들려주시오
나 항상 듣던 말씀
나 항상 듣던 말씀
주 예수 크신 사랑 또 들려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