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Exodus

출애굽기2장_행복한 도망자

Abigail_아비가일 2021. 8. 19. 15:45

장성한 모세.
이유는 모르겠지만 히브리민족에 대한 애끓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알수 없는 감정이었다. 자신은 애굽에서 일생을 교육받고 살아왔다.
애굽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였다.


이곳은 자신의 모든 터가 있는 나라였다.
모세 자신의 출생, 자라남, 사상, 가치, 철학이 모두 뭍어있는 그러한 터전이었다.
적어도 모세 자신은 스스로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히브리인들을 향한 애끓는 감정들은 모세도 모를 일이었다.
왜 이들에게 대한 긍휼이 올라오는지
동질감이 드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날이었다.

40세의 모세.
이제는 히브리인들의 노역들에 대해 그림같은 풍경으로 여겨질만큼 익숙해질만도 할 터인데,
이상했다. 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은
곧, 모세 자신이 노동하는 것과 같았다.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모세 자신의 눈물과 같이 느껴졌다.

마음이란 것을 꺼내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정말 히브리민족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는 한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히브리인 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한 애굽사람이 히브리사람을 불렀다. 노동이 허접하다나 어쩠다나. 하면서 말이다.
이리치고 저리치고. 밟고 굴리고.
그저 연약한 한 사람이었을 뿐인데.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할 한 사람이었을 뿐인데.
건장한 애굽청년이 욕을 해대며,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짖밟아버리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이었다.
그리고 모세는...
12절.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사람을 쳐죽여 모레 속에 감추니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그 마음을 추스릴 새가 없었다.

마음을 추스르기가 채 이뤄지지 않은채,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13절. 이튿날 다시 나갔을 때에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니라

단순한 의협심이었다.
“왜 동포를 치십니까. 그만 하십시오”

라고 한 말이었을 뿐이었다.
단순한 이 말이 모세는 자신의 일생을 흔들 말이 될지는.. 꿈에도 상상치 못했겠지.

14절.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내가 애굽사람을 죽인 일을... 다 알고 있구나!’
‘내가 애굽사람을 죽인 것을 어떻게 이들이 알았지... 어떻게 알은거지...’
‘ 일이 탄로난 것이구나!!! 바로께서 알면 큰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화가 화를 불러왔다.
15절.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그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한채로..
우선 낯을 피하여. 미디안으로 아래로 아래로. 죽어라 달려 도망가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15절.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한 가운데에서 이끌어 낸 위대한 지도자. 모세

한창 잘나갈 40대의 그의 모습은 ‘도망자’였다고 성경은 증언해준다.
의협심에 사람을 죽이고, 죽인 것이 탄로나 두려움에 도망가는 도망자..

이 똘똘한 남자가
자신도 알수 없게 올라오는 히브리 민족에 대한 정체성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이 고민했겠는가.

' 왜 내가 히브리민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인지.
왜 저들을 보면 긍휼한 눈물이 나는지...'

여하튼 히브리 민족을 향한 모든 마음들이 모세 그에게는. 단순한 의협심이었고
그것이 불길이 붙어,
그에게 화를 불러왔다.
도망자의 신세로 말이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참으로 억울하고 두려운 순간이겠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복된 길로 향하고 있음을 보게된다.

인간적인 마음이 0가 되어가는 은혜가 있으니 말이다.

의로운 마음, 선한 마음.. 사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꺽어지고 부러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 0가 되었을 그 때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완전한 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였다.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그리고 예수님과 택하신 백성과의 관계이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나의 것이 0가 되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대의존적인 관계.
예수님이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신 것처럼
이제 절대신뢰의 관계 속에서 열매맺어가는 관계가 되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을 그 자리로 데려가신다.
‘0’의 상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새끼 손가락 하나 들 수 없는 전적인 무능인 상태.
여기에서 얻게되어지는 하늘의 은혜로
하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모세도 곧 알게되어지겠지.
자신이 축복의 길로 접어든 행복한 동행자라는 사실을.



전적 무능의 상태에서 전적인 은혜로 인해, 하늘의 신령한 복을 얻는 의존적 존재로 신분을 바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 할 수 있다고 펄펄 뛸 때에는 아무것도 손에 남는 것이 없었는데, 이제 정말 나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알아 절대 의존적으로 설 때에, 하나님이 열매맺어주시는 그 열매를 받고 누리며 감사하며 취하는 놀라운 은혜의 삶으로 바꾸어주심에도 감사합니다. 저도 존재적 도망자였습니다. 늘 두려워서 벌벌떨고 상황과 환경만 부딪히면 도망가는 자에게 은혜 베푸사, 결국 행복한 도망자? 행복으로 가는 디딤돌이었음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의존적인 자로.. 나를 전부로 맡김으로 얻게되어지는 하늘의 축복을 오늘도 누리게 하옵소서. 한치 앞도 알수 없는 세상이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나를 맡겨드립니다. 감사하고 사랑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