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Exodus

출애굽기2장_나도 모르게 준비되고 있는 것들

Abigail_아비가일 2021. 8. 19. 15:51

허리가 잘록한 여인들이 우물가로 온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다.
여러 소리를 내며 양을 우물가로 몬다.

흙먼지를 한껏 들이마신 모습이지만
땀방울이 그을려있는 얼굴이 멋들어지게 보였다.



여기 미디안에서는 여자목자들이 있다.
보통은 남자들이 목자역할을 하는데, 간혹 집안에 남자들이 없을 경우는 어쩔 수가 없다.
여인들이 양을 칠 수 밖에.

우물가로 인도한 그들의 얼굴에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있다.
늘 상 겪는 어려움은 우물가에서이기 때문.

남자 목자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한다.
혹은 먼저 온 우리를 강제로 내쫓기도 한다.
여자 대부분이 모여서 함께 무언가 해보려해도, 남자목자를 이길 수가 없다.

그저 목을 축이고 싶은 양떼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어야 할 뿐..

16절.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절.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



그리고 오늘은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17절.....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떼에게 먹이니라.



일찍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 애굽 그 사람 덕에. 피식 웃음이 난다. 고마움에 마음에 꽃이 피는 듯 했다.
뭘 어찌하여야 할지 모르겠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왔느냐”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주었어요 아버지.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물을 길어서 양떼에게 먹여주었어요”
“오 그래? 그럼 그 사람은 어디있느냐.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니? 어서 그 사람을 청하여 음식을 대접해야 하지 않겠니. 어서 모셔오너라”

18절.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절.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떼에게 먹였나이다
20절.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그리고, 오갈 데 없었던 이 남자.
몸에 기력은 없고, 갈피는 잡지 못한 것 같지만

눈이 총명한 이 남자.
정의의 편에 서고자 하는 이 또렷한 남자를 초청하게 된다.

아버지 르우엘은 모세에게서 이 총명함을 느꼈다.
모든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자신의 보석같은 딸 십보라를 줄 만큼..

21절.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시간이 흘러, 아들 게르솜을 맞이하게 된다.
십보라에게는  일생이 뭍어있는 평범한 삶이었지만,
애굽의 궁정에 있었던 모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아내 십보라, 그리고 아들도 얻었고
거할 처소도 얻게 되었지만은.

아직도 모세는 혼란스러웠다.
아직도 애굽을 나와 떠도는 것 같았다.
처소가 있는데, 마음이 정착되지 않는 것을 자신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워.
내가 왜 애굽에서 나와야 했지
내가 왜 정처없이 떠돌아야 했지.
양을 쳐야한다니.
왕궁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난 이곳에 와있다.
나는 그때 왜 사람을 죽였을까? 왜 분노가 났을까..
나는 누구일까.
난 어디서와서 무엇을 해야하는 것일까.
난 어디로 가야하나. 결국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정처없어.. 내 인생이 그러한 것 같아. 내 인생이 그래, 내 존재가 그러한 것 같아.'

그렇게 모세는 자신의 현재 마음을 담아 아들 이름을 지었다.
22절.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그리고, 여기는 애굽
애굽 왕은 죽었다.
노동은 고되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은 더욱 거세어져갔다.
23절.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셨다.

24절.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사람에게는 두가지 성장이 있는 듯 하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성장이다.
아이가 걸음마를 떼고, 달리고 커서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이러한 성장 과정이고,

또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과정인데,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 전체이고 존재의 전체여서, 눈에 보이는 성장과 상관없이 성장이 진행되지만. 누구도 도울 수 없고 스스로 전능하신 분 앞에서 해결?해야하는 성장과정인 듯 하다.



오늘 모세는 그러한 두 과정을 겪었다.

건장한 남자가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아이를 기르고..하는 눈에 보이는 과정과

눈에 보이는 것과 상관 없이
그의 마음 속을 전부로 차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과정이었다.

그는 사랑스런 아내와, 사랑하는 아들을 품에 안고 , 양 떼를 치면서
그의 마음 안에 존재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난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주 본질적인 질문이다.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라는 아들 게르솜의 이름의 뜻은.
그의 내면 전부를 나타내준다.

‘내가 떠돌이 인생을.. 사는구나.
내가 타국에 있구나.
여기는 내 터전이 아니야. 여긴 타국이야.
나는 나그네야. 여기에 정착할 수 없어.
그럼 나는 어디에 정착해야 하는것일까?
애굽? 미디안 광야?
내 아내와 아들이 있는 이곳이 내가 정착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는 애굽으로 돌아가야하는 것일까?
나는 도대체 어디서 왔지?
나는 누구지? 무엇을 택해야 하지?'

모르긴 몰라도, 모세는 양떼를 치면서 수없이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터.
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질문
스스로 찾을 수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을 것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씻고 아들을 품에 안기도 하지만..
껍데기는 있고, 알멩이는 없는 속빈 무엇처럼..
발을 디딜 곳이 없는 공중 부양을 계속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참 한숨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사람은 언젠가 이 본질적인 질문 앞에 부딪힌다.
죽음이 다가올 때. 혹은 아주 어려운 일에 닥칠 때. 혹은 등등.
왜냐하면, 사람 안에 하나님이 주신 속성 자체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정착 말고
영원에 잇대어서 볼 때, 나는 어디에 정착을 해야하는 것인가..
하는 그러한 것들.



참 건강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모세 스스로에게 이런 존재적인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끈질긴 과정 끝에,
아주 멋진 답을 주신다.

하나님과
그의 나라
그분의 구원의 경륜에 대하여.

이제 곧. 내일 묵상케 될 떨기나무 앞에서 발견하게 되어지겠지!



여하튼,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는 이 과정,
자신의 존재가 ‘영원’이라는 것에 부딪히는 과정은 정말이지 귀한 시간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한 영혼을 준비시켜 가신다.

안으로 밖으로
하나님 열심히 준비해가시는 것을 본다.

모세의 내면에서
또, 모세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