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Exodus

출애굽기22장_야심차게 준비한 내 백성은 나를 닮았지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1. 16:03

도덕에 관한 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에 지켜야 할 도덕법은 무엇인가?
오늘 도덕법도 여러 가지 모양에서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져 있었다.

1. 먼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꾀어 동침했을 경우에 대해서
2. 무당에 대해서
3. 짐승과 행음하는 자에 대해서
4. 이방인과 과부와 고아에 대해서
5.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었을 경우
6. 재판장,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 것
7.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

등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가만 보면 당시 이런 법이 있다는 것은
당시 이러한 일들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임일 볼 수 있다.

무당도 있었고, 짐승과 행음하는 자들도 있었고..
서로 돈을 꾸기도 했었고.
또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동물의 고기를 먹는 일도 있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이런 일상을 다 들여다보시고, 세밀하고도 섬세하게
전부 알고 계신다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그분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실제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 내가 주목한 대목은 이것이다.


-과부와 고아와 이방인들에 관한 법-

만약,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었다고 치자. 그랬을 때 그들에게 이자를 받지 말아라. 혹시라도 가난한 이웃의 옷을 전당잡았을 경우, 해가 지기전에 옷을 줘라. 그는 그 옷이 유일한 옷이라. 겨우 알몸을 가릴 그런 옷인데, 그것을 빼앗으면 그가 무엇을 입고 잘 수 있겠니. 그러니 그러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25-27)

그러면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하신다.


“나는 자비로운 자 임이니라” (27)



하나님은 자신이 자비로우면 , 자신의 백성들도 자신과 같이 자비롭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시면, 자신의 백성들도 거룩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이것에 자신이 있으신 듯 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내 백성들!! 이라고나 할까?



하튼 나는 오늘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닮기 원하는 마음에 ‘트레이닝’을 하시는 듯한? 그런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기대를 잔뜩 건 장남 장녀에게 하는 그런 트레이닝이라고나 해야하나.
그만큼 도덕적인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21절.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 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22절.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5절.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라. 이자를 받지 말라.



이것은 단지 공동체의 기본적인 규정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그 이상의 삶을 살도록 이스라엘 백성이 부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자로 말이다.

오늘 본문은 아주 명확하게 명시되어있다.
그 하나님의 성품이 바로 ‘자비로운 하나님’ 이다.




학대받기 쉬운 대상들을 돌보는 자비로운 하나님
필요한 경우에 내가 손해 보더라도 저들을 삶의 필요를 돌아보는 자비로운 하나님.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의 장자 이스라엘의 형벌이 크다.
24절.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4절.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27절. ....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보기에는 너무 이방인, 나그네, 과부와 같은 이들의 편을 드시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야심차게 준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는 기대가 있으신 것이다.

내 백성은 나를 닮아 자비롭지.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는 자가 아니야
널리 마음을 넓게 해서 더 줘라
약자를 돌아보는 마음을 가져라
유일한 옷을 빼앗아서 알몸을 가릴 것까지 가져가 버리도록 야박하게 하지 말고

마치 노예가 신분이 바뀌어서,
왕자의 교육을 받는다고 해야할까?



그러나 이런 여유롭고 넓고 풍성한 마음은 , 이스라엘 백성이건 아니건
존재적으로 죄된 인생이어서 불가능할 따름이다.

오직 심령의 존재가 바뀐 십자가의 자리에서만이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
자비로운 하나님의 마음이 죄인의 마음에 부어져야 가능한 일인 것.
말씀이 심령에 새겨져야 가능한 일임을.

하나님은 벌써 알고 계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