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Exodus

출애굽기27장_하나님의 꿈 vs 세상의 꿈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1. 18:58

조각목으로 제단을 만들라.

제단이요?



하나님께서 제단을 만들라고 하셨다.
이 제단은 희생제물을 바치는데 사용되어지는 놋제단이었다.

길이가 다섯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
그러니까 약 2.4 미터씩 된다.
높이는 3 규빗 .1.4 미터이다.

2.4m x2.4m x1.4m 의 제단이다.

1절.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 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리고 나서
그 위 네 모퉁이 위에는 작은 뿔을 만든다. 그 뿔을 제단하고 이어 붙여놓고
그 위에 놋으로 싼다.

3절.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그다음

재를 담는 통, 부삽, 대야, 고기 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든다.
왜냐하면 제단이 희생제물을 바치는 용도이기 때문이다.
희생제물을 바칠 때에는 이런 도구들이 필요했다.

제단의 그릇을 놋으로 만들었다.
3절.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제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그리고 나서

제단 위에 놓을 ‘그물’을 만든다.
고리 네 개도 만든다. 고리 4개는 제단 절반쯤에 달아놓고
채를 연결해서 끼우면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것이다.

4절.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을 만들고
5절. 그물은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 곧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6절. 또 그 제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7절.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제단을 메게 할지며



마지막으로,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든다.

8절.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그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나는 오늘 이어서 ‘제단’에 대해서 묵상을 하였다.
말하자면 이제 성막 밖을 나온 셈이다.

성막 밖에는 물두멍과 놋제단이 있는데,
놋제단은 희생제물 (양, 소, 비둘기 등등) 바치는 데에 쓰이는 용도로 나무로 만들어 놋을 씌웠다.

상상을 해보았다.
가로 x 세로 x 높이 = 2.4 x 2.4 x 1.4m에
채로 꿰어서 들고 갈 수 있는 놋제단이라면..

무게는 어떠할까?
혹은 색은 어떠할까?
크기는 어떠할까? 
등등 말이다.



또 이런 생각도 해봤다.
하나님은 왜 놋제단을 만들라고 하셨을까?
놋 제단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제단 기구 하나하나에도 예수님에 대해서 심겨 놓으셨을텐데..

제단을 금으로 싸지 않고 왜 놋으로 쌌을까?
왜 성막 밖에다가 제단을 두었을까?
왜 뿔은 네 개 일까?

이스라엘 백성의 사고는
부정 – 정결 – 거룩
이라는 3단계적 사고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과 제단은 어떤 연계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이런 등등의 생각.
모든 기구들은 색부터 놓는 순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나는 이 타이밍에 제단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답을 찾지 못하고 물음표만 떠오르는 중에 마지막 구절에 집중하게 되었다.

8절. ......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산에서 네게 보인대로.
라는 구절.

이 말은 즉,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산에서 이러한 제단에 대한 그림을 보게 하시고
모세로 하여금 지시하여 그들이 만들게 하시겠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던가?

새번역 성경에는 8절이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출 27:8 제단은 널빤지로 속이 비게 만들되,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그대로’

그러하니, 하나님이 모세에게 제단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그림을 그려주신 것이 맞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나는 모세가 이 그림을 받을 때를 묵상해보게 되었다.
제단에 대한 그림을 받는 모세...
하나님으로부터 제단과 채와 색과 무게와 제단의 의미에 대해서
마음에 받아지는 모세..

과연 이 그림을 받을 때에 모세는 마음은 어떠했을까?



간단히 말해, 절대 힘들거나 주눅 들거나 시무룩하거나 귀찮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속에서 힘이 솟구쳤을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나올 때 모세의 얼굴에 수건을 덮을 만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춰진 것을 보면 더욱 알 수 있다.)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가슴에 묵직한 생수가 터지는 듯 했을 것이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지만, 영혼이 아멘하며 소리쳤을 것이다.
세포세포가 살아나 활력을 갖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일을 하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진행하나,  언제 다하나, 언제 끝나냐의 생각보다.
무언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지는 못해도
이 비젼에 사로잡혀서, (그래 사로잡혀서)
이미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던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꿈이라는 것이 그렇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비젼 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생동감이 있고 활력이 있고 생기가 넘친다.

일을 하는데
사실은 일을 쉰다.
열심히 일하는데
영혼에 참된 안식을 하는 그러한 일..

내 욕심으로 인해서 이끌고 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은 잡히지 않을지라도, 어떠한 확신이 있어서
철저히 자발적으로 자신을 드리게 되는 그러한 하나님의 일.

바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것이다.

이 것에는 반드시! 반드시! 열매가 있다.
열매가 있되 풍성하게 있다.

왜냐?
출발부터가 하나님이었기 때문이다.
과정도 하나님
진행도 하나님
마침표도 하나님

그것에 자신을 드린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그분의 뜻이 남고.
열매는 풍성하게 맺혀지게 된다.



세상에서도 꿈과 비젼이 있다.
그런데 다른 점은, 세상꿈은 불안하다 . 두렵고 . 초조하다.

왜냐하면, 자기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출발도 나로 인해
과정도 나로 인해
결과도 결국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안되면 어떡하나
망하면 어떡하나
수만 가지의 이유로 늘 두렵고 늘 불안하고 늘 초조한 것이 바로 세상 꿈이다.

열매도 없고
허망하고 허무한 것이
세상이 제시하는 꿈의 허상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은 다르다.
막연해 보이지만 확실하다.
겨자씨 만하게 작아보이지만, 100배가 넘는 보장된 열매가 있다. (하늘 상급이라 할 수 있겠다)
초라해 보이지만 견고하고
없어질 것 같지만 날마다 든든히 서가는

그리고 결국 선한 열매로 가득한 그러한 하나님의 꿈인 것이다.



묵상을 마무리하며
나는 오늘 모세가 그림을 받을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다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모세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