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Leviticus

레위기10장_두려워하여 섬기는 경외하는 마음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5. 17:16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명령하시지 않은’ 무언가를 하면 어떻게 될까?
오늘 그 일이 일어났다.
모세로서는 참 두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1절.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다른 불을 담아 올때만 해도,
그저 가까우니까, 저 멀리 가서 가져오기 귀찮으니까
다른 불이 크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혹은 여러 편리성을 이유로.. 가져온 불이었다만 이 불이 순식간에 삼켜버릴 줄은 알지 못했었다.

2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아론은 잠잠했다.
어안이 벙벙했을 지도..
내 눈 앞에서 사랑하는 두 아들이 순간의 잿더미로 변하다니..

오히려 이 상황에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모세가, 진짜 모세다웠다고 해야할까.

3절.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이후에 모세의 명령대로 미사엘과 엘사반이 죽은 시체를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갔다.

모세가 이른다.
“아론형, 엘르아살과 이다말. 너희는 이 때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으면 안되. 그것은 너희 죽음을 자초하는거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할 수 있어.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해야해. 오직 너희가 슬퍼한다면 너희 형제 이스라엘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해야해”

6절.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 할 것이니라
7절.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 즉 너희는 회막문에 나가지 말라 그리하면 죽음을 면하리라 그들이 모세의 말대로 하니라



이어서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갈 때의 규례’에 대해서 이어진다.

절대! ‘포도주’ 나 ‘독주’를 마실 수 없음에 대해서이다.
9절.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그래야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할 수 있다고 하신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모세가 아론과 아론의 남은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 ‘제단 곁에서 먹으라’ 라고 지시했다.
꼭 ‘거룩하고 정결한 곳’에서 먹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것은 너희의 소득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그 제물을 ‘불살라 버렸다’

분명 모세는 ‘가장 거룩한 곳 , 정결한 곳에서 먹으라’고 했는데 불살라 버렸던 것이다.


여호와께 다른 불을 드려, 아들 둘을 잃은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아들 둘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다니.. 모세가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세가 노한다. “너희가 내가 명령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했을 것이니라!” 18절

그 후에 말하는 아론의 대답이, 오늘 나의 묵상에 하나님 주신 레마의 말씀이었다.
“ 오늘 그들이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겼으리요 (19) ”
모세는 이 말을 듣고 ‘좋게 여겼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몫인 제물을 먹는 것 조차도 위험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세는 형에게 이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좋게 여겼다’



맞다. 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신 레마의 말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경외하는 마음’이다.

오늘 본문을 보았을 때에, 달리 생각하면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이 감정도 없으신가?
너무 비인격적이신 것 아닌가?

그 사람이 행하는 과정 중에 좀 힘들었겠소로니.. 아니면 조금 귀찮았겠소로니..
거두절미하고, 너무 비효율적이로소니..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딱 한번’ 넣었다고
불로 일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리신단 말인가?

융통성도 없는 하나님인가?
왜 사람 목숨을 이렇게 대하시는가?

라고 생각이 들겠는가?
만약 이런 생각이 든다면, 노! 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은 그 어떤 누구보다 인격적이시다.

예수님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그분이시기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닮아있으셨다.
죄인에게 세리에게 친절을 베푸신 분이시다. 고귀한 인격. 그분의 성품..
사랑과 인내와 겸손이 어디까지인지 ‘나귀’티고 들어오신 분
그분의 별명은 ‘평강의 왕’이시다.

그분만큼 사랑스럽고, 그분만큼 인격적이신 분이 있을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싶어하시는 걸까?
사람이 생각하기에 ‘사랑스럽고 인격적이고 친절한 ’이전에 선제되어야 할 중요한 마음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을 두려워떠는 마음..

오늘 본문엔 앞뒤가 맞지 않는 두가지 사건이 나온다.
하나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제사법을 어겨서 불에 타 죽는 일이 있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제사법을 어겼는데 하나님의 대리자인 모세가 ‘좋게여기는’ 일이었다.

이 두 사건에 무슨 법칙이 있는 것일까?
대강봐도, 하나님이 명령하신 제사법을 ‘ 잘 지키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두 번째도 하나님 명령하신 제사법을 어겼다면, 모세의 책망이 이어지거나 두 번째 불이 떨어지는 것이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은 그것이 아니다.
모세의 형 아론이 ‘지극히 두려운 마음’으로.. 어떻게 제사장의 제물의 몫을 하나님 앞에서 먹을 수가 있겠느냐..
내가 섬기는 분이 이런 분이신데 내가 어찌 감히 그분 앞에서 내 몫을 챙길 수가 있겠느냐..

두려워떠는.. 죽을까봐 벌벌 떠는 두려움이라기보다
하나님 그분의 실존을 알게된 영혼의 고백이지 않을까 싶다.



인격적인 무엇 이전에 하나님 앞에 선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두렵고 떨리고 경외함으로 섬겨야 하는 이 마음.
하나님 앞에 선 마음..

말씀의 절대성
하나님의 절대성..
하나님 중심성

이 때에 나는 이 말씀이 생각난다.
삼상 3:2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시 25:14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가장 하나님을 경외하신 분이 누구신가?
바로 예수님 그분..
그분을 믿는 믿음이 오늘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 수 있게 하신다.
오직 인류에 유일하게 예수님 한 분만이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경외하며 그 분 만을 주목하여 사셨다.


이제 임마누엘 하신 그 은혜로 인해

믿음으로 거듭나 성전 삼아주시고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영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셨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