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estament/Peter

베드로후서1장_ 앎

Abigail_아비가일 2021. 9. 12. 15:47

오늘은 베드로후서1장이다.



어제 궁금했던 영지주의에 대해서는 '책별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나오지 않았다. 사실 대~강 읽었다. ^_^ 자세히 읽으면 찾을 수도 있겠다만. 오늘은 못 본걸로.ㅎㅎ

대신 재림하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미혹된 가르침과 성경을 사사로히 풀었던 이단적인 가르침이 있었던 것은 배경 설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오늘 베드로후서를 접하는 내게..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긍정적이고 기쁜 밝은 감정
또는 감사.
또는 매우 측은한?.....
아니면.. 짠한 .. 마음이 들었다.  코 끝이 찡한 짠..
혹은, 잔잔한 감동..
놀람?! 설렘.. 감격.


이런 감정들이 한꺼번에 드는 것이 참 신기하다.
사람은 정말 신기하게 지어졌다. 하여간.



편지를 써내려가는 사람은 바로 '베드로'..

복음서에 보면 가히 '형님'이다 할만큼  사람이 따르는, 참 사람 좋은 사람이었던 베드로.

베드로의 실수들을 보면 지금 오늘을 사는 내게도 참 마음이 따뜻해 질만큼 인간적인 편한 옆집 아저씨 같은 베드로..
죽음에 임박하여 쓴 편지이다.

14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놀랍게도, 그는 죽음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와 같은 죄인이 예수님과 같은 방식으로 죽을 수 있겠는가?' 

결국 그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 형을 선택한다.

그러니.. 이미 베드로 사도님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어떻게 죽어야 할 지에 대한 마음이 그려져 있을 터..

또 그 죽음이 임박해있음을 알고 있는 상황으로 짐작이 된다.



베드로 사도님에게는 죽음이 임박한 상황이지만, 밖으로는 교회에 고난과 핍박과 다른 이단적인 가르침이 교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바로 '재림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이었다.

16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죽음을 앞둔 자..그리고 사랑하는 교회의 위기를 마주한 자..

자신이 어떻게 죽어야 할 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그의 마음은..

정말 놀랍게도..

참 평온하다..




그의 필체에서 잔잔한 기쁨과 승리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1절.예수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죽음을 앞둔 자의 평강의 축복이다..


3절.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11절. 이 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아.. 그는 진정 그 나라에 들어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원한 나라. 그토록 기다렸던 예수그리스도의 품에 안길 그 나라를 소망하고 기대하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그는, 여느 증인들과 다를 바가 없이..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지 않고 남겨질 사람들을 격려하며 응원한다.

스데반처럼, 바울처럼.. 먼저 본을 보이신 예수그리스도처럼 말이다.

1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 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1장을 찬찬히 살펴보면셔,
1장에 4번 나온 단어에 주목하게 되었다.


'앎' 이다.

2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절. .....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8절.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12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옆에 원어를 보니 '앎'은 에피그노시스로
전인적인 관계 속에서 깊은 영향을 주고 받는 앎을 뜻한다고 말한다.

예수가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된다면..'
그분이 얼마나 선하신 분이신지 '알게 되면..'
그분의 신실하심과 높으신 뜻을 '알게 되면..'


가능하다..
죽음을 뛰어넘는다.
사랑은 불길보다 강하다.
뛰어넘을 수 있다. 알기 때문이다..
이 죽음이 끝이 아닌 것을..또 많은 생명의 열매를 낳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은혜는 도대체 어디까지 일까?
그분의 선하신 뜻은 어디까지 일까..
내가 그분의 뜻을 셀 수 있을까..

묵상하면서 든 생각이었다..



한 죄된 인생을 뒤짚어놓으시고..그분의 영원한 언약의 약속으로 보증을 하시고..
영원히 알게 하시는.. 은혜와 평강을 더욱 알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초대..
십자가 자비로의 초대..

다 대보자..그것이 십자가 복음을 이길 수 있단말인가?
그것이 예수님을 이길 수 있단말인가?
그 예수님이 내 마음안에 오셨단 말인가?

이것을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참 죄 많고 부끄러운 내 인생 가운데.
늘 실패와 후회로 얼룩진 내 인생을
은혜로 덮으시고,
내게 나아와! 더욱 내게 나아와!

초청 앞에 선다.

 

앎으로..

주님을 더욱 알아가는 이 삶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