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1 Samuel

사무엘상20장_언약으로 맺어진 생명의 관계

Abigail_아비가일 2021. 9. 3. 01:23

다윗이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바로 요나단 이었다.

요나단이라면, 그의 아버지가 가장 신뢰하는 자일 뿐 아니라 가장 가까운 종이기에 신뢰할 법 했다.

사울은 요나단의 의견을 듣기를 즐겨했으며, 요나단의 판단을 신뢰했었다.

그러니 다윗에게 일어나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을 요나단은 분명 알고 있으리라.


“이유를 말해줘.”

상가된 얼굴의 다윗이다.

“내가 무엇을 했니?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이야? 내가 너희 아버지 앞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있었니? 요나단 기억해봐. 내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를. 왜 왜 왜 도대체 왜 그가 내 목숨을 찾는 거지? 왜 나를 죽이려 하는거냐구.”

단숨에 쏟아져 버린 말.

깊은 신뢰로부터 나온 말이었다. 요나단은 누구보다 나를 이해하고 있으리라.

1절.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다윗은 다시 말했다.

자신의 직감으로는 도저히, 아니 상식선으로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르르 떨렸던 사울의 눈빛.. 살짝 스쳐만 지나가도 영원히 회복 불가능할 것 같은 창을 있는 힘껏 내리치던 사울의 모습을..


‘요나단, 너는 모르지 않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온 몸을 부르르 떤다.

“아니야 요나단. 너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너희 아버지는 너와 내가 아주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래서 스스로 요나단 네가 슬퍼할까봐 두려워서 너에게 알리지 않은 거야.그러나 내가 다시 정말로 여호와께서 살아계신 것과 요나단 너의 생명을 걸고 내가 맹세하건데, 나는 지금 죽음의 문턱에 와있어. 이제 곧 죽게 될거라구!”

3절.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아버지께서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에게 이것을 알리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네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요나단도 현실을 조금 직감한 듯 했다.

“만약 내 아버지가 너를 해치러 결심하셨다면 내가 반드시 네게 말할거야. 내가 왜 네가 그 말을 하지 않겠니?”

9절.요나단이 이르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확실히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와서 그것을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그들은 들로 나갔다.

그리고 하나님의 증인으로 삼아 맹세를 한다.

떨리는 손을 마주 부여잡고 죽음 앞에 서서 온 마음을 담아 엄숙하게.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네게 이 일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여호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합니다. ”

13절.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그리고 너 다윗은 내가 사는 날 동안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베풀어 나를 죽지 않게 해줘. 뿐만 아니라 너의 대적들이 다 끊어진다 해도 너는 너의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아줘” 

14절.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절.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다시 한번, 요나단의 전심의 고백의 맹세가 이어진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16절.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나는 요나단의 결단을 본다.

생명처럼 사랑하는 친구의 대적은 바로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생명으로 따라가는 귀한 다윗을 죽이려 한다.


요나단은 결단하고 서야 했다.

누구의 편에 들 것인가.

아버지의 편에 서서 육신의 아버지이자 한 나라의 왕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자신의 친구, 이 소년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


요나단이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은.... 바로 자신의 친구.

하나님의 눈길이 닿아있는 바로 이 친구의 편에 선 것이다.

 

이런 결단이 담겨있다.

‘만약 너가 너의 대적 우리 아버지를 죽인다고 할지라도, 나는 너의 편에 있겠어.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앙고백이야.’

 

오 마이 갓..

자신의 전부, 일생을 부인한 전부된 고백이었다.

다윗이 자신의 일생을 걸고 하나님 앞에서 광야 생활을 하는 것과 ‘동일한 농도’로의 싸움을 요나단도 결정적으로 바로 이 때에 맹세한 것이다.


나는 요나단에 대해서 그전에는 그리 깊이 생각하지 못했었다.

늘 다윗의 삶, 다윗의 광야 생활, 다윗의 고난과 하나님이 주신 승리들..

그러나 다윗의 뒤에는 바로 이런 자들이 있었다.

다윗과 생명을 같이한 사람.

자신의 육신의 가족을 다 버려서라도 다윗의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

그것은 자신의 신앙이자, 목숨 건 고백이었다.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기에..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전부로 달려가는지 알기에..

그것을 알아보고 거기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자신의 전부로 달려드는 바로 그 한 사람 요나단..

오늘 그 요나단이 무척이나 눈에 띈다.

 

요나단..

요나단..

 

생명의 고백으로 위기의 순간에 다윗과 함께 했던 생명의 사람 요나단..

다윗의 주변엔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공동체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아무리 관계가 인간적으로 좋다가도,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는 상황이 안좋아지면 깨져버리게 된다.

그러나 신앙으로 엮어진 관계,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맺어진 관계는 상황이 안좋아지면 안좋아질수록

선명해지고 뚜렷해지며 더욱 힘이 있어진다.

 

맹세를 하기까지

언약을 하기까지..

 

바로 생명의 언약을 하기까지 더욱 단단해 진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있다면..

하나님 중심이라면..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생명의 관계 언약적 관계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됩니다. 생명을 건 관계... 그것은 사람의 어떠함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의 전부된 신앙고백으로 인한 것임을.. 이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 안에서 맺어지는 신앙공동체가 얼마나 단단하고 견고한지요! 이 신비가 얼마나 놀라운지요! 이것을 교회됨으로 이뤄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무지하고 알지못하는 저로 하여금 눈을 들어 이 신비를 더욱 보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