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의 문을 여는 첫 마디.
“복 있는 사람은..”
시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과 악인들을 대조하면서 내용을 전개해 가는데, 대조되어 전개되는 흐름에 따라서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 복 있는 사람 /
-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 (1)
-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다.(1)
-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1)
→ 악인, 죄인, 오만한 자들의 ‘꾀’ ‘길’ ‘자리에’를 말하고 있다.
-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2)
-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3)
→그가 하는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3)
-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 (6)
/악인들/
-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5)
-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5)
-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한다(5)
-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6)
오늘 시편을 여는 첫 말은 이것이다,
‘복있는 사람은...’
이어져 나오는 내용이 ‘여호와의 길에 서다’ ‘묵상한다’ 등등의 표현을 보아 시편기자가 말하는 ‘복’이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잘되는 복’ 이 아님을 금새 알 수 있다.
원어를 찾아보니 이 ‘복’은 이러한 복이라더라.
‘아쉬레하이쉬’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 과 번영이다. 바로 하나님의 은총 때문에 행복한 사람. 이러한 자를 ‘복있는 사람’ 이라 일컫는다.
나는 오늘 묵상을 하면서, 이 ‘복있는 사람’의 표현을 통해, 이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가 가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첫 번째,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여기서 ‘악인’‘죄인’‘오만한 자들’ 이 각기 어떻게 그 죄의 길에 빠지는지 점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처음에는 ‘꾀를 따르다가’ ‘길에 서다가’ ‘자리에 앉아버리는’ 그러한 점진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악한 자의 말을 듣는 수준에 있었는데, 어느새 그 악한 일에 마음이 돌아서 그 길에 서고, 결국 그 자리에 앉아버리는 악인의 모습..
처음에는 ‘꾀를 따르는 ’수준이었는데 ‘그 자리에 앉아버리는’ 것을 보게되면서,
아주 특별한 중죄를 지은 자가 ‘악인’ 이 아니라.. 일상에서 얼마든지 ‘악한 길’에 따라갈 수 있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순간의 선택의 기로 앞에서, 내 뱉을 말의 기로 앞에서, 얼마나 악한 자의 꾀를 따르고 싶은 욕망이 많은가?!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그 자리를 처음부터 거절한다.
아주 적극적인 대적? 의 자세임을 볼 수 있다.
악인의 ‘꾀를 주는’얄팍한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때부터 ‘따르지 않는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철저히 악과 반대편에 선다.
두 번째.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매우 적극적인 태도임을 볼 수 있다.
여호와의 은혜와 은총을 입은 자.. 하나님이 두루찾으시면서 보호해주시는 자는 바로 이런 자다.
오직!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밤낮으로 묵상하여 읊조리는 자.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사모해 주야로 묵상하는 이것도 매우 적극적인 태도임을 볼 수 있다.
사실 말씀 보기가 쉬운가? 일상이 얼마나 바쁜데 말씀을 쉬이 가까이 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야로 묵상한다고 한다면,
그 마음 중심에 말씀을 사모하고 기뻐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 매우 적극적인 열린태도! 이것이 복있는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이었다.
세 번째.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3)
성경에서는 ‘모든 일’을 보장해주고 계신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전부 형통할 것이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을 것이다.!
고대 팔레스타인은 매우 건조한 토양이다. 이런 척박한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기 때문에 잎이 무성한 이 나무!
나무는 존재 자체가 특성상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열매를 맺기 때문에,
복 있는 사람의 세번째 특징은 , 자신도 매우 무성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한 삶의 열매가 끊임없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세상에서는 ‘나를 위해 살라’ ‘나를 위해 열매를 맺으라’ ‘자기 계발’ 등등의 말을 하지만,
사실 복있는 사람은 철저히 ‘남’을 위해서 열매를 맺고,
그런데? 그것이 손해가 아니라 자신에게도 완전히 복이 되는 이 역설적인 원리를 가지고 있다 이말이다.
요약해보자면 이러하다.
첫째, 악인들의 편에 적극적인 태도로 서지 않는다.
둘째. 하나님의 편에 적극적으로 선다. 그것은 그분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에 나타난다.
셋째. 자신과 남에게도 풍성한 열매를 모든 일 가운데 맺게 된다!
나의 것을 채우고 또 채워도 부족한 이 무저갱 같은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는 법’인 것이다.
너, 너를 위해 살지 말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봐
그 모든 비법을 말씀에서 찾아봐
말할 수 없는 만족과 열매가 네 삶에 가득할거야.
어찌보면 가장 가기 힘든 길 일텐데,
하나님은 보장해주신다.
그 길에 내가 너를 복주겠다고!
그리스도인이 사는 삶의 원리는 이것이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다 퍼주고 다 손해보고 남는 장사 없이 완전히 망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늘 시편 마지막 절엔 이렇게 요약해준다.
6절.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내 삶에 악인들의 편에 선 것은 없는지 돌아보자.
악인의 말에 나를 내어주고 그의 꾀를 따른 것은 없었나?
그리고 그 길에 서서 오만한 자리에 앉은 것은 없었나.
또 내가 하나님 앞에 서서 그 말씀을 주야로 즐거워하고 있는가?
그렇다.
그렇다면, 삶의 열매. 모든 영역에서 드러나야 할 열매에 막힌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혹은 잘 열매맺히고 있는 부분은 어디인가? 돌아보자.
그리고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 들고 나아가자!
또한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나를 드리자!
하나님 오늘 이 아침에 복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정의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고 경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복된 자리가 아닌 악인의 자리에 섰던 모든 순간을 회개합니다. 늘상 모든 삶의 영역에서 열매 맺는 자가 바로 복이 있고 하나님의 형통을 입은 자 이군요! 이 삶을 제게도 약속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악인의 편에는 적극적으로 서지 않고, 하나님 편에는 적극적으로 서며, 하나님이 맺어가시는 이웃을 향한 열매 맺는 삶이 되어지도록 참된 복된 길에 나를 드립니다. 이것이 가장 최고의 만족과 행복의 삶인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제 삶 구석구석 이 일을 행해주시고, 열방의 모든 교회에게 이 일을 행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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