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동되더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헷갈리지 마시라!
이곳은 감옥이 맞습니다!
이 서신을 쓴 자는 '죄수의 옷을 입은 자' 맞습니다!
아. 다시 정리하는 나 조차도, 다시 헷갈립니다.
이곳이 감옥이 맞는가. 이분이 죄수가 맞는가.
아차차. 또 있구나. 서신을 받는 수신자가 있는 곳은 우상이 즐비한 '에베소' 이기도 하다만은
그리고 이 '죄수'는 어마어마한 우상들을 타파?하는 진리의 전쟁을 치열하게 했었으랴만은.
그런데 서신을 쓰고 있는 이 죄수의 얼굴은 함박웃음? 입가의 미소? 아니면..행복과 만족? 이런 정도의 수준이 아닌 것 같다.
아.. 그는 함박웃음과 행복과 만족과 기쁨을 뛰어넘었다.
무언가에 압도된 느낌인데...
맞다. 그는 '압도'되었다. 다시 말해, 사로잡혔다 이말이다.
압도됨. 사로잡힘.
네 맞습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혔다.
심장이 터져나갈 듯. 자신의 영혼을 가득 매우고도 남을 탄성과 환희와 기쁨과 영광과 감사로. 한 글 자 한 글자, 정성과 목숨을 다해, 서신을 써내려가는 그의 얼굴에 결의가 가득차다.
오늘 나는 에베소서 3장을 묵상하면서.. 감옥도 그를 막을 수 없는,
죄수의 옷도 그를 막을 수 없는, 수 많은 우상들로 인한 거짓메세지도 막을 수 없는, 존재적 탄성을 보게 된다.
그것은 실로 '넘치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예전에 에베소서 3장을 볼 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1절.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이방인으로 인해 '갇혔다')
7절. ... 내가 일꾼이 되었다.
13절. ...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바로 이 구절들이다.
정서적으로 나는 이 구절들이, 참 무거운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예수를 믿었으니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복음은 사람을 '갇히게 하며' '일꾼이 되게하며' (죽도록 일만하는)
그리고 마지막 홈런은 '여러 환난'이 늘 있는데, '낙심'할 수도 없는 그런 정서였다. (다단계에 잘못든 느낌이랄까.ㅋㅋ)
하여간, 또 다음구절도 있다.
8절.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아. 사도바울은 여기에다가 겸손까지 하는 구나.
아.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겸손한 '본'을 보여야 하는구나.
때론 멋지게 보이기도 했다.
마치 최고 형님처럼.
'이 형님이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너희들을 위하여 희생할테니, 그래. 나에겐 환난이 있어도 너희는 낙심치 말거라. 나 또한 작은 자이니..내가 복음의 일꾼이 되어서 갇힌 자가 되었지만 괜찮아. 얘들아, 힘내자. 화이팅'
뭐 이런 말로 나의 정서를 요약할 수 있겠다.
여하튼 오늘 다시본 에베소서 3장은 그런 정서가 아니였다.
그는 사로잡혀있었다.
'우리 복음 전하기 위해 힘내자' 를 포함한 ..
아니 그것을 엄청나게 뛰어넘은 '내가 이렇게 행복해!! 내가 이렇게 넘쳐!! 충만해!! 엄청나!! 너희! 낙심치 마! 너희가 낙심했던 것이 후에 하나님을 알게 되면 부끄러워질꺼야! 이건 너희에게 영광이야!!'
마치 보물 단지를 잔뜩 발견한 사람같이.
이 보물이 너무 많고 너무 커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같이.
그렇게 보였단 말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유는, 하나님 때문이었다.
사도바울은 그의 모든 근거가 '자신'에게 있지 않았다.
모두 전부가 '하나님께만' 있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신중의 신'이요 '만왕의 왕'이시니, 싸이즈가 어마어마하게 클 테다.
만약 선물을 주신다면, 이 이상 좋은 것이 없을 정도의 최고!!의 선물을 주셨을테다.
바울은 이것을 깨달은 것 같다.
다음의 구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2절.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내게 주셨다.
3절.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셨다.
4절.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다.
5절.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셨다.
7절. 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일꾼이 되었다.
8절.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 때문이었다.
9절. 하나님 속에 감추어진 비밀을 드러내 보여주셨다.
10절. 교회인 나에게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셨다.
11절. 그것은 영원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뜻이었다.
12절.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담대함과 확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16절. 그는 영광으로 풍성한 분이시다.
16절. 성령으로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18절.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신다.
19절.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얼마나 풍성한지!! 모든 충만함으로 너희를 충만케 하실 것이다.
20절. 우리 중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에 훨씬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시다.
21절. 교회와 예수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다!!
이야.
사도바울이 서신 쓰면서 점차 더 감동이 되었었나보다.
점차 고조가 되는 감정과 함께, 하나님 그분 속에 담겨진 비밀 속의 보화를 본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이다.
그리고 그 예수가 얼마나 엄청난 분이신지도 본다.
오직 은혜로!
우리에게 이 비밀을 알게하셨다.
엄청나고 어마어마하다.
바울이 점차 감정이 고조될 수 밖에!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 것이.
복음은 말그대로 '기쁜소식'이다.
온 세상에 가장 기쁜 소식! 누구든 이것을 알게되면 기뻐 뛸 수 밖에 없는 가장 복 된 소식이다!
그런데 그것이 감춰진 비밀이었기에, 공중권세 잡은 자가 있기에 전하는 자에게 환난이 있는 것이지.
복음은 정말 기쁜 소식이다!
그럼 오늘 복음을 맡은 나는, 어떤 모습이 정상일까?
기쁜 것이 정상이다! 하하.
한 강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데, 그 복음 때문에 기쁘지 않은 것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고난입니다. 그것이 가장 작아보이는 일상의 영역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기쁨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빼앗기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지 마십시오. 빼앗아가는 사단과 싸우십시오.'
나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지만, 아직 육체에 속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치열한 싸움이 있다.
그러나 싸움자체가 끝이 아니다.
누구보다 고난에 1등이라 할 수 있는 바울도 고난을 뛰어넘은 복음의 영광과 능력과 축복에 사로잡힌 것과 같이
오늘 지금을 사는 나에게 닥치는 고난도
능히 이길 수 있는 기쁨의 좋은 소식이 능력으로 주어져있다.
십자가 복음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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