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Ecclesiastes

전도서5장_둘 다 부자인 사람들이 있었는데...

Abigail_아비가일 2021. 9. 2. 16:48

전도서 5장이다.
오늘은 '재물과 부요와 존귀도 헛되다'는 부분을 묵상하게 되었다.



두 사나이?가 대조되어 나온다.

10-17절의 사나이 와
18-20절의 사나이다.




첫번째, 10-17절의 사나이. 이 사나이 정말 불쌍한 사나이다.

17절.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는다.
늘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다.

이 사람이 가난해서 그랬던 것일까?
No!  엄청난 부자였다!

13절.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이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이 사나이는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될만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많은 재물을 소유했는지 감이 잡히는가?
어느정도냐면 너무 재산이 많아서 자신을 통해서 먹는 자들도 많다고 이야기한다.

11절.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성경에는 이 사람의 재물이 너무 많아서 잠을 자지 못한다고 써 있다.

12절.......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재산은 쌓아두고 많은데, 정작 자신은 1도 누리지 못하는 이 사나이.

성경은 이것을 '큰 폐단'이라고 하였다.

13절. 내가 해 아래에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자신에게 '해가 될만큼' 미어터지도록 그렇게 재물을 소유한 사람.
이 사람은 가져도 가져도 만족이 없고, 불려도 불려도 근심만 쌓일 뿐이다.



여기에 두번째 사나이?가 있다.
이 사나이는 정 반대의 사나이이다.
음.. 가난해서?
아니다!

동일한 부자이다!

19절.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이 사람도 동일하게 재물이 풍부하나, 앞의 첫번째 사나이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누림'이었다.

19절. ......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선물로 '재물을 받았다.
그리고 그 받은 선물을 마음껏 누리며, 수고함으로 즐거워한다.

너무 대조되지 않는가?

성경은 이러한 사람을 '선하고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18절.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선하고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재물과 부요가 그에게 주신 '그의 몫'으로서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재물과 부요를 가진 사람도 이렇게 아름답고 선할 수가 있단다.



이 둘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았다.
왜 이런 차이가 나게 되었을까?
왜 앞에 있는 사람은 재물로 인해 근심이 쌓이고, 두번째 사람은 재물로 인해 즐거우며 선하고 아름답게 될까?
그럼 두번째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것이 나의 질문이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선물' 이라는 것.

바로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누리는' 것.
바로 이것이다.



첫번째 사람은 자신의 욕심에 따라서 열심히 모았다. 그래서 만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두번째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을 믿음으로 받았다. 그래서 자족함이 있다.



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20절에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두번째 사람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바로 이 사나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았다.
그의 마음에 기뻐하시는 것을 하나님은 응답해주셨고 복을 주셨다.
이렇게 막힘없는 관계, 하나님 앞에서의 선물을 즐거워하고 받을 만한 그릇이 준비된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첫째 사람은? 10절. 은을 사랑하는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아닌 은과 풍요 자체를 사랑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의 관계는 좋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 둘은 크게 대조가 된다.



그럼 나는 두번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여기서부터는 적용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속에서 그분의 선물을 누리고 기뻐할 것!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바로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첫번째.
사람의 가장 처음의 본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기뻐하는 것. (맞겠지? ㅎㅎ)

바로 이것이다.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고 누리고 행복해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을 그릇을 준비하고.. 되려 이런 것이 바로 사람의 본분이자 바른 길을 가는 것이란다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힘이다.
그분을 기뻐하는 것이 나의 힘이다.
그분과 함께하는 것이 나의 힘이다.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나의 힘이다.

그분께서 주시는 선물과 은총을 기뻐하며 누리는 것, 그것이 오늘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가장 깊고도 크신 뜻이다!



하나님! 은혜를 은혜로 받는 자를 기뻐하시는군요!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자! 하나님의 선물을 내 마음의 그릇으로 받는 자, 그리고 마음의 소원을 올려드리는 자. 하나님과의 사귐과 교제를 원하시는 줄로 알아 감사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이 일을 이루심에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은을 사랑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족하여 그분과 함께 걸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발견하며 만족하는 삶으로 오늘도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