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Genesis

창세기17장_나도 모르게 빚어져 가고 있네

Abigail_아비가일 2021. 2. 16. 17:25

13년이 흘렀다.

1년
2년..
3년..

그렇게 13년..
이제 내년이면 난 100살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잊으셨을까.
벌써 이스마엘이 자라 13살이 되었다.
이스마엘이나 잘 커서 이 아이가 내 뒤를 잘 이어갔으면 싶다.

이제는 더이상...
지칠대로 지친.
의욕도 없는.
모든.. 소망과 힘이 다 빠져버렸다.

하나님. 살아계시고 섬겨야 할 분은 맞는데..
이제는 그 분께 대한 의문도 사라져버렸다.
'자녀'라는 것이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사라져 버린 지 오래..
포기. 전적 포기.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내게 나타나셨다.
1절. 아브람이 구십구세 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이셨다.
나는 단번에 그 앞에 엎드려졌다.
3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리고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4절.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여러 민족의 아버지..

5절.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그리고 내 이름이 바뀌어졌다.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으로..

7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절.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느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 하나도 잊지 않고 계셨다.
약속 전부를 잊지 않으셨다..
난 엎드려져 그분의 말씀을 듣는 내내.
마음에 감격하고 감사를 드릴 따름이었다.

물론 내 믿음이 연약하여,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만..
내 나이가 100세인데 어찌 그런일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만.

여하튼. 하나님 하나도 잊지 않고 다 기억하고 계셨다.
13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한결 같이...
아니 약속이 더 구체적이면 구체적이었지.. 하나님 한번도 변하시 적이 없으시다.

그분이, 오늘은 내게.
이전의 약속을 더 구체적으로 풀어 설명해주시는 것 같았다.
열국의 아비가 될 것..
그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꿀 것.
사래를 사라라고 바꿀 것.
할례를 행할 것.
정확히 '1년 후'에 자녀를 갖게 될 것
그 이름은 '이삭'이 될 것.에 대해서였다.

10절.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5절.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말고 사라라 하라.
21절.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나는 소망을 끊어가는데. 하나님은 더욱 신이나셨다.
나는 점차 포기에 가까워가는데, 하나님은 더욱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하신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참으로, 믿겨지지 않는 말씀이셨지만..
나는 순종했다.
모든 남자들.. 곧 돈으로 산 자들까지 데려다가 포피를 베었다.
남들은 이상하다 생각하는 그 일.
우리 주인님이 대체 왜저러시나 하는 소리가 다들 목구멍까지 차오른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일을 행하고 있었다.
내 머리는 이해가 안될지라도
내 마음 깊숙한 곳은.

하나님 그분의 성품..
그분의 신실하심.
그분은 영원하신 분..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계신분.
그분은 나의 모든 앞뒤를 알고계신 분..
영원하신 그분 앞에 신뢰를 드리게 된다.

그 일을 이루실 것을..



사실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17절. ...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구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18절.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을 표현한 것이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런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냐는 반문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본문을 다시보며,
아브라함의 깊은 속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말은 저렇게 해도. 이해가 안되니.. 그렇게 반문해도.

아브라함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받쳐주고 있음에 대함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할례를 행하지 않았을 것을.

아브라함도 모르게..
자신은 자신을 점차 포기해나가며..
약속에 대한 언약도 잊혀져가는...
자신도 자신이 어떠 상태인지 알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과 제 3자가 보기엔,
그는 이제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져 가고 있음을 보게된다.



하나님의 크신 섭리는 놀랍다.
때로는  촘촘히 짜여져 있는 그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위에서 쿵 떨어져서 완전히 끝났구나 생각하는데,
내 밑에는 엄청나게 촘촘한 그물로 짜여져 있어서.
전혀 다치치 않는 그런 섭리.

아브라함..
그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믿음의 조상이 되어가고 있다.
자신은 몰라도..
나는 깨닫지 못해도..

하나님의 크신 손 아래 그렇게 빚어져 가고 있다.



때론 나의 반응이 믿음인지, 아닌지..
내 믿음의 걸음이 맞는지 아닌지.
그 생각에 집중되다가 지칠때도 있다.
아니면 내게 닥치는 상황이나, 등등 해결의 방도가 보이지 않을때 더욱 그럴 수 있겠다. 만

한가지 가장 좋은 해결책은.
살아계신. 실제하신. 놀라운 섭리를 가지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분을 향해 신뢰의 눈을 드는 것.
그분은 정말 완전하시다고 고백하는 것.

나의 반응에서 눈을 들어,
그분의 완전하심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완전하신 성품으로 인해.
내가 그렇게 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도 신뢰하는 것.
나의 근거가 아닌. 그분으로 인하여, 그분의 선하신 손길을.
진짜 선하다고 100. 믿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한 믿음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