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Genesis

창세기35장_눈물의 쌍곡선을 타고

Abigail_아비가일 2021. 8. 18. 14:33

오늘로서 마무리되는 야곱의 굵직한 이야기.
창세기 25:19에서 시작된 야곱의 이야기는.. 중요한 대단원을 마무리합니다.
이삭이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1. 라헬을 보내다.

‘너 이제 야곱 아니야.
이스라엘이야..
여러 민족의 아버지. 이스라엘. 야곱. 내가 너를 그렇게 부르마..'

마음의 귓가에 쟁쟁거리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이제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그 순간.
내 이름을 바꿔불러주셨던
가슴 찡한 장소
벧엘을 뒤로하고

에브랏으로 향했다.

에브랏에 거의 가까이 온 지점.,
아직 이르지 못한 어느 시점에서 라헬이 고통하기 시작했다.
해산의 고통이엇다.

에브랏으로 향하는 길목에서의 고통.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신 아프지도 못하고
동동구르고 있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아내를 잃을 것 같은 기분.

그리고는 아이를 얻고, 아내를 잃었다.
그렇게 일생 사랑했던, 내 아내, 라헬을 베들레헴 길에 장사하게된다.
..

16절.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9절.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1절.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내 아내는 이생의 길을 떠나며,
‘슬픔의 아들이라’ 는 베노니! 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나는 그 이름을 감히 용납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
에 안겨준 보석같은 선물인 아들을 그렇게 평생 부를 수 없었다.
축복의 손인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불러주었다.
베냐민.

라헬.
나는 당신을 슬픔이라고 기억하고 싶지 않소.
평생 그렇게는 기억하지 않을거요.




2. 르우벤.....

르우벤 이녀석은 물이 펄펄 끓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눈엔 그리 보였다.

내 아들들 사이에서 호탕하고 호기 넘치고 리더쉽 있는 형이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이녀석을 때려 눕힐 수는 없다.
동생들의 눈이 있으니.
그러나 간간히 내게 쏘아 붙히는 그 녀석의 눈은.
날 아비로 생각하는가. 의심이 들기에 충분했다.

사랑하는 자식이긴 한데.
사랑하는 만큼 화가 치밀어오른다.

저 자식을 어떻게 해야하나.
나는 르우벤이 아니기에, 르우벤의 마음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가지, 르우벤이 나를 무지 싫어한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녀석이 내게 드디어 일을 벌였다
22절.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내게 첩은. 성적인 대상으로 아이를 낳는 소유물이었다.
나의 첩을 범했다는 소식은. 근친상간을 넘어
나를 침범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고 싶었던 큰아들 장자 르우벤.

물이 끓는 것 같은 이녀석의 본심은.
나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그리고, 결국 일을 벌였다.

르우벤에겐
결코 장자권을 줄 수 없겠다.




3. 아버지 이삭의 죽음

기럇 아르바. 헤브론이다.
아버지는 그곳에 머물러 계셨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할머니 사라. 어머니 리브가가 뭍혀 있는 그곳. 헤브론...

그리고...
29절.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내가 밧단아람 (하란)으로 도망갈 때게 20년 전이었는데,
아버지와 에서를 속일 때. 그 때부터 기운이 다하시던 아버지께서
20년이나 더 사셨다..
그리고 손자까지 보셨다.
기적과 같이, 형 에서와 함께 아버지를 장사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
이제는 곁에 없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도. 곁에 없다.

형 에서는. 이 집안에 큰 관심이 없다. 그는 그의 가정을 꾸릴 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이름이 바뀌어진 자는 나 야곱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기업을 받은 자.

어마어마한 기업을 받았지만.
정작, 내가 의지할 곳은 없어졌다.

내 집안을 들여다보면...
썩어 송장 냄새가 나는 일들로 가득하다.
르우벤이 나의 첩을 범하다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닌.....

아 앞으로
어찌하면 좋으랴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약속을 받고, 눈물 콧물 범벅하며 은혜를 쏟아 받고
믿음으로 한걸음을 떼어.
이 믿음의 길을 가노라면.

내 생각대로
꽃길이 가득한 행복한 길이 펼쳐지지는..........

않는 것 같다..



기대고 의지했던 것들이
산산조각나고

사랑했던 것들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하나 둘 씩 떠나가고.

내가 ‘터’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너져버리는

눈물의 과정을
지나게 된다.



포장되었던 껍데기가 모두 벗겨지고
진짜라고 여겼던 것들이 모두 가짜라는 것이 드러나고,
포장과 합리화로 겹겹이 싸여 근근히 ‘괜찮아’라고 버텨왔던 것들의
실상이 드러나는 순간....

인생은 쓰나미와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눈물의 쌍곡선.

가슴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것도 아니였네
이것도 아니였네

진짜 믿을 것이 아니였네
하는 과정들은..

눈물
아픔
후회
갈갈이 찢겨져 상처에 피가나는 것 같은
아픈 과정이지만....




이 시기를 지나고 난 후엔,
진짜로 거듭나는 참된 걸음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야곱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너무도 사랑하는 라헬.. 일평생 사랑한 아내를 보내고
의지했던 아버지도 보내드리고.
또 사랑하는 아들에게서 배신을 당하고..

야곱이 무슨 죄가 있어..

눈물의 쌍곡선을 타는 과정중에,
야곱에게 진정한 사형선고가 났으리라 생각이 든다.

아, 이것도 아니구나
저것도 아니구나.
..

인생에 의지할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구나.
오직 그분 밖에 없구나..

하는 과정.

이것이 참된 길을 가는 과정이엇겠거니.
오늘 다시 새삼스레 생각이 되어진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아들을 내어주실만큼 나를 사랑하신 이야기.
이 동화같은 실제 사건이..
내 사건으로 받아지면.

하나님은 이 작업을 하시는 것 같다.

너가 사랑하는 이것보다 내가 더 너를 사랑해
너가 의지하는 이것보다 내가 더 의지할 자야.

실제 삶에서 하나하나 사형선고를 내리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더 실제 되어지도록 하는 과정...

죽은 믿음이 실제믿음 되어지게 하시는 과정.
눈물 쏙빼는 이 과정이.
진짜 행복자의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인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