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Genesis

창세기37장_내 이야기는 그분의 이야기가 되다.

Abigail_아비가일 2021. 8. 18. 14:47


1절.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거주하게 된지. 얼마나 흘렀을까.
지나간 세월이 스쳐지나간다.

세겜에서 딸 디나가 강간당했던 일.
그로 인해 아들 두 녀석이 큰 일을 저질렀던 일.
여하튼 그 일 속에서도 하나님 우리를 당신의 날개 깃 아래 보호해주셨다.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하나님 이름 빼놓고 설명할 것이 없을만큼

지금 야곱의 가정에게 있는 재산들이나 자식들 먹는 것이나
모든 것이 하나님 손길안에 은혜 였음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셉.
좀 특이하고 눈에 띄는 아이였다.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웠던 아이.

비록 나이가 6세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꾀죄죄하고 찌뿌두두둥한 우리 가족들에게.

홀로 귀티가 나는 아이였다고나 할까.

요셉.
홀로 땅에 앉아 글 같은 것을 끄적거린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
하는 것을 보노라면.
이상하게 그 아이에게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흙 바닦에 홀로 앉아 놀고 있는 것 뿐인데.
6살인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신비하게도 그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은 궁금했다.
재미나고 특이한 것. 혹은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아이였다.

이 야곱의 집안 전체에서 뒤에서 두 번째. 막내 베냐민에서 하나 위인 형일 뿐이었는데..

이제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첫 아이여서인지.. (아마 그래서 일테다)
아니면. 정말 이 아이에게서 뿜어져나오는 귀티여서인지 몰라도.

야곱은. 정말 요셉을 사랑했다.

이따금씩,
아빠! 하고 달려와 웃는 얼굴을 볼 때에는
자동적으로 무르익어 지도력을 발휘할 요셉이의 모습이 오버랩 되곤 했다.
사자와 같은. 위엄과 당당함이
이 아이에게 있었다.

요셉.




세월이 흐르고 ..
아버지 야곱의 얼굴에도 주름이 늘어나고.
요셉도 17세가 되었다.
벌써.
이제 양을 칠 때가 되었지

2절.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요셉의 눈에는 티와 같이 잘 보였다.
야곱의 가문에 대한 자신감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었을까. 마치. 요셉의 형들이라면 그러면 안되. 하는..

때론 사랑의 표현이 상대에게 저주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표현하는 자도, 받는 자도. 서로 성숙해야 할 때면 더욱 그러하다.

2절. ..... 그가(요셉)이 그들의(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요셉은 아직 어렸고.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정의의 편에 서는 것.
옳다고 하는 것을 힘있는 자에게 말하는 것.
그래서 고쳐지는 것.이 가장 좋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형들은
4절. ....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더 큰 이유가 있었지.
드러내놓고 차별하는.
할아버지......아부지!!!!

아무리 눈에 넣기에도 안아프다 하실지라도. 너무 티가 나지 않습니까...
정말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우리는 아들 아닙니까..
우리는 안보이십니까....

3절.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4절.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난 오늘 요셉의 스토리를 열며,
이 스토리를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하면서.
이 가족 안 으로 들어가 전개되는 가족의 스토리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한 것 같다.
요셉의 발자취, 그가 걸었던 걸음. 걸음마다 뭍어나는 가나안의 향취와 흙 모래. 공기까지.
애굽으로 향하는 낙타 발굽 소리까지.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까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요셉 이야기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성경을 읽을 때에, 그 안에 들어가 읽을 것.
내가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오늘을 사는 내가 그가 되어, 그의 하나님을 만날 것.
그것이 창세기 요셉이야기를 만나며 내 안에 든 첫 번째 생각이다.



요셉. 과연. 알고 있었을까.
아무리 모르긴 몰라도 17세나 되었으면, 형들이 자신을 무지막지하게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어쩌면 모르긴 몰라도, 요셉 편에서 요셉 나름대로의 관계를 해결해보려는 시도를 해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것이 아버지에게 이르는 일 이었다면.. 관계가 더욱 틀어졌겠지만 ;;;;

여하튼 요셉은. 자신에게 편안하게 말하지 못하는 형들과
부담스럽게 채색옷을 입히시는 또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운명의 장난과 같은 특별한 인생의 스토리를 걸어가게 된다.

자신이 이런 운명을 구한 적이 없었는데. 신에게 애걸복걸한 적이 없었는데.
그 인생 자신만의 스토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나님은 각 개인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하신다.
가정환경, 성격, 기질, 모든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그렇게 한 사람을 빚어가신다. 누구도 따라하거나 틀에 짜여져 찍어낼 수 없는 오직 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스토리...
모두가 다른 스토리...
그러나 각기 들여다보면 매우 특별한 스토리...

오직 그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 스토리로. 하나님 친히 각 사람을 그렇게 개입하신다.



놀라운 것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면.
이 스토리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구원의 경륜에 참여케 된다는 것이다.

그냥 살아갈 뿐인데.
그저 운명인줄 알고 살게된 것 뿐인데.

모든 상처와 죄와 거짓과 속임과. 등
나의 기질로 인해
나의 성향으로 인해
가정환경으로 인해
부모님으로 인해... 등등등의 내가 운명을 바꿀 수 없는 그 독특한 스토리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등불같이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빛나게 된다.

모두가!
각자각자!

각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열매가 다르다.
그래서 남 열매를 부러워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