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Genesis

창세기42장_이 것 만큼은!

Abigail_아비가일 2021. 8. 18. 18:21


곡식을 나귀에 싣고 가는 걸음은 즐거운 걸음?
아, 곡식이 많을수록 슬픈 걸음.

시므온은 결박되었고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애굽으로 향해야 한다.

터덜터덜. 형들의 발걸음이 정말 무겁다.
26절.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 곳을 떠났더니



자루를 풀었을 뿐인데.........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곡식의 대금으로 가져간 돈이 자루에 그대로 들어있었던 것이다.

“형!!!! 형!!!! ......형......형................어떻...해...”
“무슨일인데?”

대수롭지 않게 본 자루에 그대로 들어있는 돈들.

정말 큰일 날 일이었다.
대제국 이집트에 대금을 치루지 않고 곡식을 가져왔단 말인가.
아니면 우리가 돈을 받고 시므온을 노예로 팔았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혼이 떨릴 소식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제 정말 어찌하련가..

27절.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28절.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야곱의 집.

어떻게 가나안 까지 도착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도착한 가나안 땅에서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이 긴박한 소식들을 야곱에게 아뢰었다.
29절.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다.


“아버지. 그 땅 애굽의 주인이.... 막내 아우를.. 데려오라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를 정탐꾼이 아님을 확신하겠다고 했습니다... ”
(34절.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러면 너희가 정탐꾼이 아니요 확실한 자들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

한 마디 한 마디가  참 꺼내기 어려웠다.
아버지 야곱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또는 간혹 스치듯 얼굴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을 이어갔다.

“ 그때야 시므온을 우리에게 돌려준다 했습니다....”
“ 그제야.. 애굽과 무역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루에 있는 돈뭉치를 쏟아내었다...
(35절.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지라...)



 난 이 대목에서 야곱이 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
 사실 정신을 잃었었는지도 몰라.



 모두가 혼이 떨리도록 두려워하는 표정이었다.
 누구도 어떤말도 꺼낼 수 없었다.

 베냐민 까지 애굽으로 데려가야해
 시므온은 옥에 갇혀있어
 우리는 전부 정탐꾼으로 몰리고 있는데.
 그런데 결정적으로 자루에 돈이 있어.
 대금을 지불한지 알았지. 그런데 돈이 있어.
 결국 정탐꾼으로 몰리고 말 거야.
 베냐민을 데려간다 해도 해결 안될 수도 있는 상황인거야.
 그렇다고 안데려갈 수는 없어.
 상대는 대제국 이집트.
 우리는 모두 굶어죽을 수도 잇어.



야곱은 가슴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이 모든 상황이 그에게 터질듯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어두운 손이 심장을 조여오는 것 같은 압박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군가 자신을 압축하고 있는 듯한 느낌.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으로 밀어넣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직 내 살 소망이 베냐민이었는데!!!!!!!!!!!
내 사랑하는 아들 베냐민인데!!!!!!!“

20년 전, 아빠 무릎에 앉아 이리저리 양볼에 뽀뽀를 하며 , 올망졸망한 눈으로 야곱을 따랐던 요셉. . .이 생각났다.
한 번도 잊은 적 없었던 요셉. 내 아들 요셉.
내 가슴에 뭍은 아들... 요셉.. 내 심장에 뭍은 아들 요셉..

‘그리고 그 동생 베냐민..... 내 숨이자 쉼과 같은 아이였는데!!!!!’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는거야!!! 요셉도 없어졌어!! 시므온도 없어졌어!!! 베냐민까지 뺏아가는거야!!! 다 나를 해롭게 하려는거야!!!!” (36절)

“미쳤어. 다 미쳤어. 이 세상 돌아가는 것 다 미쳤어. ... 난 스올로 내려갈거야.
난 내 아들을 잃을 수 없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야곱이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아버지.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내 아들을 대신 잡겠습니다. 내가 반드시 그들을 데리고 돌아오겠습니다.” (37절)
보다 못한 큰 아들 르우벤이 아버지를 달래려 말해보지만, 야곱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전혀.. 소용이 없었다.




정말 야곱이. 이성을 잃었을까.
이렇게 가슴이 압박이 된다면... 그럴수 있을까

38절. 야곱이 이르되.. “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할거야. 그 형은 죽고 베냐민만 남았어. 너희가 가는 길에 재난이 미치면 .. 나는 스올로 내려갈 거야....”




이어지는 43장엔 기근이 더욱 심하여.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을 때까지.. 야곱은 베냐민을 내어주지 않는다.
시므온이 아직 옥에 갇혀있는데,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애굽총리와 오해가 쌓일 수도 있는데.
아랑곳 하지 않고.. 곡식이 다 떨어질 때까지. 야곱은 결코 그 아들 베냐민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마만큼 야곱에게 있어서 베냐민은 자기 자신과도 같은 아들이었던 것 같다.
사실 베냐민이 아닌 요셉이 야곱에게 그러했겠지. 하는 생각이 든 것은

38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다’

다른 아들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요셉을 자기 자신과 같이 여겼었나보다.
그를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였었던 것이 참 내게도 전달이 된다.

그렇기에, 그 아들을 잃었던 그 슬픔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리고 그 동생 ‘베냐민’을 잃는 슬픔을 마주하기가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어쩌면 야곱이 ‘스올’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딱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도 든다.
야곱에게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죽음의 골짜기’ 같은 시간이 두려움으로 엄습했을 수도 있다.



다 말할 수 없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것들이 있다.
사람이던지 추억이던지 트라우마이던지 물건이던지 자신이 숨통과 쉼통처럼 의지하고 있던 것들...그리고 사랑했던 것들....

때론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압박하여서.
그것 달라. 하시는 때가 있다

그 사람이 준비되었을 때에..
이제 놓으라. 하실 때 말이다.

죽을 것 같은 슬픔이 몰려들고,
가슴에 통증과 압박이 스며오는 그 때에,
결국 놓게되는 그 순간.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듯이.
다시 전부인 요셉을 얻게되는 역설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십자가의 역설이다.

죽으면 부활하는 역설.
사라지는데 다시 얻게되는 그런 것 말이다.



이것도 하나님 것입니다.
저것도 하나님 것입니다.
라는 고백은

내 손에서 이것도 저것도 없어지는 것 같은 슬픔과 고통에 마주하게 되지만.
아니.. 더 아름다운 것으로 받게된다.
그것 없어도 살 수 있는 , 혹은 더 크고 아름다운 것으로 얻게 되는.
혹은 하나님 그분을 알게되는 축복..
진짜 그분을 야다하여 아는 통로가 되어질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