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기근이 몰아쳐왔다.
붉어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은 기근이었다.
할퀴어진 자리에 침을 뱉는 것 같이.
기근은 그렇게도 차갑게 다가왔다.
1절.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아..버지.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은.. 다 떨어져 갑니다..”
“너희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해 양식을 조금 사오너라.”
2절.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가족모두 말이다.
베냐민을 데려갈 것 인가.
베냐민을 데려가더라도 지난번 대금을 값아야하고
시므온을 데려와야하고
양식이 떨어져가니. 이제는 모두 주려 죽을 수도 있다.
어떤 실타래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럴 때에는.. 직면해야한다.
유다. 가 앞장섰다.
‘베냐민’에 대해 아버지께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애굽 그 총리가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였습니다. 너희 아우 베냐민이 함께 오지 않으면 우리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베냐민을 우리와 함께 보내셔야 우리가 양식을 사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아버지께서 보내시 않으시면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내려가도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3,4,5절)
“ 왜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하였느냐. 그것으로 인해 왜 나를 괴롭게 하느냐” (6절)
듣고 있던 형제들이 대답하였다.
“그 사람이 우리와 친죽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지 않겠습니까. 아버지가 살아계시는지까지 물어보았습니다. 아우가 있느냐 물어보기로 묻는말에 대답한 것입니다. 우리가 베냐민을 데려오라 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7절)
형들의 기세와 유다의 논리에. 주춤하는 야곱에게
다시 유다가 이야기하였다.
“저 아이 베냐민을 저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애굽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우리와 아버지 우리 아이들이 다 죽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말입니다.
만약, 베냐민이 그리 걱정 되신다면. 제가 담보가 되겠습니다. 내가 만일 베냐민을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않으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짓는 것입니다." (9절)
확신에 찬 그의 말은 자신을 담보로 걸어도 좋겠다는 헌신에서부터 나온 힘이었다.
나를 전부로 걸어서라도 이 가족을 살려야겠다는 그 마음이 어디서 언제부터 출발된 것일까.
간절한 유다의 눈빛은 야곱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해 보였다.
“아버지. 우리가 지체하지 않았으면 벌써 두 번 왔다 갔을 겁니다” (10절)
..
..
...
오랜 시간이 지났었나보다.
벌써 애굽에 두 번이나 왔다 갈 수 있을만큼의 시간...
충분한 그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떨어져 가는 양식바구니를 바라보며,
유다는 어느새 자신을 전부로 던질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왔던가보다.
그리고, 유다의 결정적인 한 마디는,
야곱으로 하여금 이것만큼 놓을 수 없었던 자신의 전부를 걸게된다.
“네 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3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리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로다..” (14절)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15절.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15절 한 절의 말씀이 이루어지기에. 그간 얼마나 많이 돌아왔던가. 고개를 넘고 물을 넘듯.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요셉 앞에 선 형제들.
그리고 형의 손을 잡고 함께 선 베냐민..
거리로 상관할 수 없는, 멀고 먼 마음의 거리를 돌고 돌아 결국 마주하게 된 순간.을 보며
몇가지를 생각해 보게되었다.
먼저는.. 얼마나 많은 마음이 흐름들이 있었겠는가.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는 마음을 열어야했던 형들의 마음에 대해서다.
지난 요셉에게 대했던 (구덩이 사건 뿐 아니라) 모든 마음에 대한 후회와 눈물.
아니 때로는 ‘ 그럴 수 밖에 없었어. 아버지가 편애하셨잖아’ 하는 변명과 자기 포장으로 인한 마음들.
혹은, 이렇게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죄성에 대한 치가 떨리는 분노.
삶이란 무엇일까. 사람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걸까 하는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들..
점차 양식이 떨어져가는 옧죄어오는 상황 앞에서 부딪히는 현실적인 질문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다시 애굽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생각만 해도 무겁기만하고.
베냐민을 끌어안고 통곡의 눈물을 흘리실 아버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자신들의 죄값을 애꿎은 베냐민과 아버지에게 뒤짚어 씌워버리는 것 같아. 미안함과 후회. 이 운명에 대한 가슴 치는 통곡..
모르겠다. 전부 부정적인 감정들이라서.
그러나 이 모든 마음의 과정 끝에,
유다는 한 가지 결단을 내리게 된다.
‘내가 담보로 서겠습니다’ 라는 결단이다.
성경은 그가 어떤 마음의 흐름과 다룸..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결정내렸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유다 안에, 이 길 밖에 없다는 생각. 출처를 모를 확신이 들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것이 심지어 자신을 담보로 주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자신을 담보로 주어야 할만큼의 유다의 결정을 보며.
예수님이 생각이 났다.
썩어 부패하여 송장냄새가 나는 인간들에게 유일한 해답은..
자신을 전부로 내어주는 사랑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은 알고계셨다.
사랑하기로 결단하셨기에, 썩은 그대로 둘 수는 없었기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기로 결정한다..
잃으면 잃으리로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겠습니다...
했던 유다와 야곱의 대화와, 하나님 & 예수님의 대화가 오버랩이 된다.
이 길 밖에 없어.
아들을 내어주는 길 밖에 없어.
내가 담보가 되는 길 밖에 없어.
대신 죽는 길 밖에는 없어.
그렇게 2000년 전 십자가는 완성되었다.
그리고 나는 새 생명을 얻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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