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앞에 서다.
사실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고개를 들어보안들 감히 볼 수 없이 높으신 분 앞에 서 있으니 원.
아니면, 후들거리는 다리는 신경성일지도 모른다.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 온 몸을 옧죄어 왔었는지...
숨을 들이마쉬고 쉴 때에, 두려움을 마시고 쉬는 것 같았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존재적인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셉을 죽인 살인자들.
너넨 죽어야해.
결국 죽고 말거야.
비열한 인간들.
그러고도 다시 살아보겠다고 애굽으로 가냐.
빌어먹을 자식들.
그나마
목숨을 담보로 한 유다의 고백이 실낱같은 소망의 끈이었지만.
다시 현실 앞에 섰을 때, 맥없이 스러지곤 했다.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향하는 길.
‘사람은 얼마나 연약한가?’.‘사람은 얼마나 풀잎같은가.’‘영원한 것이 무엇인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
스치듯이 생각해보게 된다.
무엇이.. 이 존재의 두려움을 덮어주는 실재일 수 있을까?
다리가 후들거릴 수 밖에 없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거대하신 애굽 이집트 땅의 높으신 총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뜻밖에 그들은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었다.
요셉의 집
17절.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올 때에 마주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두려움.
18절. 그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먼저 요셉 총리는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아주 쉽게 원수를 처리하기 위해서다
그는 애굽 대제국의 총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난번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것을 벌써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큰 범죄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억류될 것이다.
우리에게 달려들 것이다.
결국 시므온과 같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아버릴 것이다.
겨우 남은 재산 나귀를 빼앗아버릴 것이다.
순식간에 스쳐간 생각이었다.
사실.
두려움에 절여진 사람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스토리 전개이기도 하겠다.
전혀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사실화하여, 이미 그렇게 믿고 있었다.
요셉 총리 저는 우리를 해하고 말것이라고...
그래서 빨리 양식이나 얻어가지고 이 자리를 피해야해....
형중 한명이 이렇게 고백했다.
빨리 이 어려운 상황을 모면해야해.
20절. “총리님. 우리가 저번에 내려와 양식을 샀습니다. 그런데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러보았는데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도로 가져왔습니다. 우리 돈을 자루에 놓은 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형제 모두가.. 두려움의 극치에 다달했다.
형들의 모든 카드는 전부 던져졌다.
이들은 기근으로 인하여 가난하여 배가고프고,
데려오라는 베냐민을 데려왔으며
억울하게 대금을 지불하지 않은 것으로 오해를 받을 모든 상황까지 해명했다.
이제 모든 카드가 던져졌다.
양식을 사 갈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우리의 결백함을 받아줄 것인가.
베냐민을 데려갈 것인가
시므온을 풀어줄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노예로 가둬질 것인가
이제 처분은 요셉에게 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향한 두려움이 절정에 달해있다.
“안심하게나”
“두려워 말게나”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23절)
그리고 요셉은
시므온을 그들에게 이끌어다주었고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였으며
나귀에게 먹이를 주었다 (24절)
뜻밖의 일이었다.
너무 뜻밖이어서 어리둥절하였다.
서로가 얼굴을 쳐다보며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요셉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식사초대였다.
뜻밖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너희 아버지 그 노인이 안녕하시냐” (27절)
“아직도 생존해 계시느냐” (28절)
순간, 요셉이라는 총리가 참 따뜻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의 안부에 대해서 여쭙고 계신다.
이 느낌이 지레 짐작한 잘못된 생각인 것일까.?
하튼 그는 계속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부를 뭍기 시작했다.
29절. “이 아이가 너희가 말한 작은 동생이더냐? ” (베냐민을 바라보고)
“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베냐민을 잡으려 데려오라 하신 것이 아니였음을, 그의 목소리를 듣고 알 수 있었다.
왜 그러시는지 알 수는 없었다만..
세밀한 떨림.. 사랑스러운 목소리.. 마치 오래전부터 너를 기다렸다는 그리움이 뭍어있는 목소리였다.땅에 엎드려 절하고 있던 고개를 들어 요셉 그의 눈빛을 한번 봤으면 좋았으련만.
여하튼 기이한 일은 계속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음식을 차려주었다.
종들은 요셉의 식탁과 애굽의 식탁과 우리 히브리의 식탁을 따로 차렸는데, (그들은 우리를 부정하게 여겼다 33절)
그런데 요셉은 우리를 그의 앞에 앉혀주셨다. (33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34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그리고.. 당신의 음식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었다. ..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두려움을 잊어갔다.
요셉 그와 함께 즐거워함으로 ... (34절)
대조되는 마음이 보인다.
극도의 두려움의 사슬을 맨 형들의 마음과
그들을 안심시키려 맞이하는 요셉의 마음이다.
두려움이라는 것에 절여져있던 형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요셉의 태도가 정말 의아하고 이상하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더라도.. 왜 우리에게 이렇게 잘해주는거야? 하며 다시 요셉을 의심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순간 요셉을 믿고. 그 순간을 영원한 순간과 같이 즐거워할 수 있었을까?
다는 모르겠지만, 만약 내가 형들이었다면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긴 해도.. 요셉이란 존재에 대한 전부의 신뢰로 즐거워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다만, 더 악하게 상황이 진전되지 않고... 긍정적으로 되어가는 것에 대한 상황에 대한 즐거움은 있었을지 몰라도..
여하튼,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어가는 43장의 시점에.
나는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보게된다.
두려움에 절어있는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그리고, 사랑하기로 결단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대하여 말이다.
어느 때 보면, 사람은 정말 ‘두려움의 존재’인가? 라는 생각이 들만큼
늘상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다.
사람을 표현하기에 ‘두려움’ ‘정죄감’ ‘죄책감’ ‘수치심’ 이런 단어들이 정말 잘 어울려보인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해준다.
2:15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인생들은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 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
그냥 두려움이 체질이 되어서, 두렵지 않으면 이상한 것 같은... 두려워야 안정감이 생길만큼? 두려움이 온 몸에 붙어버린 존재들.
상황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열매에 대한 두려움, 과거에 대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것을 두려움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존재 자체가 두려움이 된 사람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죄’가 생명 안으로 들어왔고.
사망권세가 주장함으로 인하여.. 이제 벗을 수 없는 운명이 되어져 버린 것은 바로 ‘두려움’이라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존재들을 놓아주시기 위하여..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시기 위하여, 새로운 존재로 창조하신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바로 ‘사랑’으로부터 출발한 두려움을 내어쫓는 방법이다.
그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요
완전한 사랑이요
고결한 사랑인, 예수그리스도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잡으심으로 증명되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두려움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진 바된 ‘새생명’을 살게 하시는 참 복음을 준비해 주신 것이다.
오늘 요셉을 보며 두려움에 종노릇 하는 자들을 사랑으로 받아내시는 하나님 사랑을 보게되었다.
어디에 있던지 나와. 괜찮아.
안심해 두려워마.
그리고 존재적 두려움을 떨칠 수 있도록. 알아들을 때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말씀하신다.
식사를 대접하고
축복하여준다.
자신의 앞으로 데려와 식사를 함께하며 즐거워한다.
모든 틀과 형식과 관습을 깨어버린 사랑으로 그들을 받아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법.
다 알수 없어서 감사하다.
영원히 알아갈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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