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Genesis

창세기42장_존재의 끝에서 보이는 소망의 빛

Abigail_아비가일 2021. 8. 18. 18:14


“너희는 정탐꾼이다.!!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다!!.” (9)
“ 아니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어” (12절)
“ 내가 보기에 너희는 확실한 정탐꾼이야.”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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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내 주여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곡물을 사러 온 것 뿐입니다.”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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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주여. 우리는 한 사람의 아들들입니다.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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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닙니다 주여. 우리는 열두 형제입니다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입니다”(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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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아닙니다. 우리 막내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없어졌습니다.” (13절)



요셉의 계속되는 추궁에, 궁지에 몰린 형들.
곡물을 사러 온 것 뿐이었음에 대한 본인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는데,
20년 전 없어진 동생의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다.

의도된 것이 아니였는데..
형들 그들에게도 잊혀질 수 없는 사건이었다. 기억에 새겨질 20년 전. 요셉사건.

잠시 형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애굽 총리 앞이었기에, 오래 어두운 빛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 가슴에 응어리진 사건이 건드려졌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기까지 였으면 좋았으련만.....



15절
“너희의 진실함을 이렇게 증명하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절.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라!!!!. 너희는 전부 갇히어 있으라!!!
나는 너희의 말을 시험하겠다!!!.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볼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너희는 정탐 꾼이니라!“

총리 요셉의 말은, 날이 선 칼과 같아서.
보이지 않는 칼이 목을 치는 것 같이 두려웠다.



우리는 졸지에 대제국 애굽의 정탐꾼으로 몰리게 생겼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만약 베냐민까지 잃게 되신다면, 그분은 정말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실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면, 우리는 죽음이다. 전부 배가 골아 죽게 될 것이다.

이쪽으로 가도
저쪽으로 가도
전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우리가 정탐꾼이라니.
어디를 봐서? ..
말도 안되...
대체 이게 무슨일이야..

피할 구멍이 보이지 않아.
이제 우리 몇 사람이 아닌 전부가 죽음으로..,
야곱의 가정은.. 이렇게 전부 죽음의 골짜기로... 쓸어내려가는 것일까.



3일간의 감옥의 시간..
죽음 같은 시간..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본성상 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결백을 찾고.
‘죄’에 대한 ‘죄책감’에
후회를 거듭하게 된다.

전혀 앞뒤 연결이 되지 않아도. ‘내가 그 때 그 죄를 짓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 판단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평소에 켕겼던, 그 부분이.. 왠지 지금의 화를 불러온 것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3일의 시간 (17절.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죽음같은 시간에.

형들은
당신들의 하나뿐인 동생이었던 ‘요셉’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해 범죄하였다.... 우리가 그가 애걸할 때에 알면서 듣지 않았어.....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한거야....”(21절)

“ 내가 그 아이에게 죄를 짓지 말자고 했지 않았냐.. 너희가 듣지 않았어.. 그의 핏값이야. 이건 분명 그 아이의 핏값이 우리에게 돌아온거야...” (22절)

차라리
가슴을 치고 통곡할 수 있다면..
얼싸 안고 울 수 만 있다면....
이 상황에서 구원해줄 누군가를 붙들 수만 잇다면..

 20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니, 지금이라도 우리의 죗값을 다 토해내고. 살아날 수만 있다면...

초 긴장, 얼음. 낯선 애굽 땅에서.. 울수도 웃을수도 책임을 다시 질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이 막막한 상황에 .
갇힌 그들은 모른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며 듣고 있다는 것을...
눈물 짖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미 용서하였다는 것을...

23절.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24절.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25절.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오늘 묵상하며 2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 존재의 끝의 절망에 선 사람들
둘, 그 사람들에게 임한 은혜

에 대함이었다.

모든 사람들에겐 얼룩진 눈물이 있다.
매우 호기있게 호탕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단하게 높은 직함의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니다.
모두에겐 얼룩진 눈물이 있다.

예전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들을 때에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저런 기가막힌 절망적인 일이 생길 수가 있었지?

아무리 포장을 하고 예쁜 모양을 해도.
그 인생에 얼룩진 죄의 열매. 또는 기가막힌 상황을 듣다보면...
그 상황에서 만나게 된 하나님 이야기가 얼마나 참 생명줄 같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아마, 오늘 본문의 형들이 그러했으리라.

기가 막힌 상황에.
어떻게 잃어버린 동생 생각이 나느냐고...
20년 전 그 마음을 어떻게 묻어버리냐고....

이것을 보면 알수 있어.
한 번도 그를 잊어버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방이 막힌 기가막힌 상황은 전부 그 동생과 연결될만큼
한 번도 그 죄로 인해 자유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



감사한 것은.
그제서야, 참된 소망이 보이고 손에 잡힌다는 것이다.

모든 답을 다 가진 요셉이 듣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이미 회복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 생각이 났다.

나오기만 해.
하시는 것 같았다.

너. 앞뒤가 막힌 것 같아?
걱정하지마.
그 기가 막힌 절망에서,
그 죄의 구렁텅이에서. 나오기만 해.

내가 다. 알고 잇어.
내가 다 이미 치뤘어.
회복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
나 너와 회복하고 싶어.
나 너 살리고 싶어.

이런 메시지가 가득하신 예수님 생각말이다.

참 놀라운 복음이다 정말.
십자가 사랑은 어디까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