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Genesis

창세기45장_100과 100의 만남은 기적을 일으킨다.

Abigail_아비가일 2021. 8. 18. 18:52

좋은 마음이었다.
애굽은 아직 흉년이 창창인데 , 다시 풍년이 든 것 같았다.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식은 바로와 신하들에게도 그렇게 좋은 소식이었나보다.
16절.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고

어쩌면, 그 누구보다 하늘에서 기뻐하고 있었는지도



무엇이든지 열어주고 싶은 것이 바로 그의 마음이었다
“ 너희 아버지와 가족을 이끌어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줄 것이다.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을 것이다”(18절)
“ 요셉 이것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애굽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아버지를 모셔오라. (19절)

수레를 내주다니, 이러한 배려는 정말 특별한 것이었다.
요셉의 가정의 아녀자들이 걸어가지 않고 애굽 땅까지 무사히 오게 하기 위한 정말 사려깊은 행동이었다.
가족과 아녀자와 종의 아버지까지 배려하는.
바로는 정말 좋은 마음이었다.

허기는,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애굽 땅의 좋은 것을 내어주겠는가



장인이 시끌벅적하다.
수레에, 양식에.

다 잃은 것 같았던 자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얻게 되었다.

애굽의 좋은 옷과 은과 양식, 앞으로 살게 될 애굽 고센 땅으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요셉을 만나게 되다니.
묶혀 썩어 송장냄새가 나 구덩이가 엮여져있는 끔찍한 죄의 사슬에서 풀어지게 되다니.

혹은 얻어맞아 죽어도 입벙긋 할 수 없는 운명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모두 뒤집어져 역전이 되었다.
 



야곱의 집

하나같이 약간 들뜬 표정이다. 나이와 체면을 던져버린 것 같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오래 묵은 것을 벗어던져버린. 표정.

약간 의아하긴 했다만,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수레에서 내려 달려오는 아들들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양식을 많이 얻어오긴 한건가.’
‘베냐민도 보이고 시므온도 보이니 이제는 좀 더 버티고 살 수는 있겠군’

“아버지!!!! 아버지!!!!요.. 셉...!!! 요셉!!! 요셉이요. 요셉”

앞다투어 다른 형제가 또 이야기를 이어갔다.
“ 요셉이 살아있었어요!”

‘요셉?’

“요셉이 말이더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요셉이는 죽었지 않느냐”

“아니요! 살아있었어요! 요셉이 우리더러 애굽으로 내려오라 했어요!”
“무슨 말이냐.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고 애굽으로 내려오라는 것은 또 무슨 말이냐”

“아 그러니까요,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있었어요! 애굽 땅 총리가 되었어요!”

“뭐라고? 이게 다 무슨 말인거냐..”
27절. ....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하더니...

그리고 한참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냐민에게 시므온에게. 그간 애굽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간이 조였다 심장이 조였다 펴지는 이야기가
서로 앞다퉈가며 이야기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야곱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지기 시작했다.

“ 내 아들.... 내 아들이 살아있더냐. 내 아들이 살아있었다 이말이더냐..”

“ 네 이 수레를 보십시오. 이 수레를 타고 고센으로 내려오라 하였습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동이 솓구치기 시작했다.
감동, 힘..
당장 애굽으로까지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다.
내 아들이 살아있다.
그리고 그 아들을 곧 만나게 될 것이다.

27절.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에게 말하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내 ㄴ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 족하다!!! 내 아들 요셉이 살아있다!!!! 족하다!!. 그래, 내가 가야겠다.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내가 죽기전에 가서 그를 만나야겠다”



어느 때를 살다보면, 꽉 막힌 담을 잔뜩 마주할 때가 있고,
때로는 뻥뚫린 고속도로를 만날 때가 있다.

크고 작고 소소한 일상들 가운데, 소소한 담과 고속도로는 늘상 있지만

어느 때에는
이거구나!! 이 길이구나!! 시온의 대로가 열렸구나!!
하듯 하나님께서 길을 여실 때가 있다.

하늘이 기뻐하는 것 같은 시간
하늘이 축복하는 시간 말이다.



그간 묵혀져 있던 오해들이 풀어지고
묶였던 사슬이 끊어져 버린 자유로 인해,
알게되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아버지에 대한 걱정. 아버지의 염려를 덜어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기쁨..
베냐민을 다시 데려올 수 있음에 대한 기쁨
무엇보다 요셉을 다시 만났다는 기쁨은

그 크신 바로께서 대절하여 주신 ‘수레’가 작아보일만큼.

때가차매 열어주신 하나님의 길과 축복은 그렇게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땅 ‘고센’이 그토록 가깝게 느껴지게 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의 거리인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장벽이 아니라, 마음의 거리이다.
하나님이 마음을 여시고, 그분이 축복하시면 모든 것이 따라온다.
그리고 그분은 길을 내실 수 있는 분이다.

단, 유다와 같이 자신을 담보로 전부로 드리는 마음 중심의 순종이 있을 때이겠다.

그제서야, 전부는 전부를 만나고
전심은 전심을 만나,
기적의 역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100이 만나는 100
그렇게 전부로 자신을 던진 유다의 결단,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로다 했던 야곱의 결단.
그리고 때가차매
하나님의 뜻이 마주하여, 가장 좋은 길을 내어주시는 선하신 주님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여시는 축복.
그분을 알게되어지는 축복을 사모하게 된다.

전부로 너를 던질 수 있겠니.
내가 그렇게 너를 만나고 싶은데,
그렇게 100으로 만나고 싶은데.
그렇게 나를 만나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