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Exodus

출애굽기30장_단절된 자에게 베푸신 은혜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3. 17:00

놋 물두멍.

“ 물두멍과 그 받침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라”
“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그라”
“ 그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손발을 씻고, 그들이 회막 문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서..”

죽기를 면할 것이라.

“화제를 태올 때에도 그렇게 하여라”
“손발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라.




거룩한 향기름.

“상등 향품이 필요하다. 액체 몰약... 향기로운 육계... 향기로운 창포... 계피 오백.... 감람 기름...”(23,24)

거룩한 관유가 될 것이다.(꼭 제조법대로 만들도록 하여라)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라. 상, 모든 기구. 등잔대. 그 기구. 분향단. 번제단. 모든 기구. 물두멍. 받침에 바르라:(28,39)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라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도 기름을 바르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라.(그래야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32)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거룩한 향.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의 향품을 가져다가 그 향품을 유황에 섞으라” (34)

향을 만들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하니라..

“이것은 거룩한 것이니. 냄새를 맡기 위해서든지.. 이 같은 방법으로 만들지 말라”(37,28)



놋에서 손을 씻고
회막에 들어갈 때에
화제로 제물을 사를 때에
손과 발을 놋 물두멍에 씻으라.

오직 성막을 위한 기름과 향을 만들어라
다른 어떤 것에도 쓰여지면 안된다.
오직 이 제조법으로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하여 쓰여져야 한다.



나는 오늘 이 짧은 본문을 읽으면서 ‘거룩’이라는 단어를 10번이나 발견하게 되었다.

거룩.
거룩
거룩.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거룩하신 분이시다.

거룩의 사전적인 용어로 ‘성스럽고 위대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한 ‘구별된’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거룩하게 구별되는. 나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그리고 이것은 철저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안봐도 너무 자명하게, 인생들의 인생은 죄로 가득차있다.
위대하고 숭고하고 성스러운 것과는 조금도 닮은 것이 없이
온통 육체의 안목의 이생의 자랑으로 꽉 차서 다른 구멍이 없는.
거룩의 앞글자도 찾아볼 수 없는. ‘죄 100’인 인생들이다.

이런 인생들 앞에서 하나님은
나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
거룩 거룩해야 한다. 지극히 거룩하다.

하신다면,
이것은 ‘너와 나는 본질상 달라!’ 하는 메시지가 아니던가?

다 알고 있는 말이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단절’을 느꼈다.

하나님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데,
‘거룩’을 이렇게 강조하신다면, 그럼 우리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것인가요?
죄와 거룩은 절대 만날 수 없는데,
하나님 자신이 거룩을 그렇게 강조하신다면, 그럼 결국 헤어지자는 것인가요?

이런 단절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복음이 있다.

우리도 본질상 ‘죄’를 포기할 수 없는 존재 자체가 ‘죄인’이고
하나님도 본질상 ‘거룩’을 포기할 수 없는 분. 거룩 그 자체이신 분이라
절대 하나되거나 한 뜻을 이루거나 한 목표지점을 향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자명한데,

하나님이 직접 그 거룩을 포기치 않으시면서, 우리를 거룩한 생명으로 바꿔내신 것이다.

그래? 너가 죄인이라서 네가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더냐?
그럼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하겠다.
내 아들의 핏값을 치러서라도..



여기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의 핏값이 치러져야 했다.
오직 예수님만이 완전 거룩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분이시기에,
그분은 나와 우리 모두 인류의 죄값. 공의의 죄값을 치루기에 완전했다. (인성)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능히 구원할 수 있는 분이셨다. (신성)

그렇기에, 그분으로 인하여
십자가로 인하여
믿음으로 인하여

내 죄된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의 생명을 받음으로 인하여

이제 하나님과 식탁을 같이 하는 ‘거룩한 생명’ 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너무나 놀랍다.

절대 가까이 갈 수 없는 하나님께.. 이제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이 놀라운 생명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