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Exodus

출애굽기31장_거룩과 안식에 대해서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3. 17:14

“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
“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다!! ”
“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13)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이니라..



“너희는 안식일을 반드시 지킬지라! 이것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기 때문이다. ”(14)

안식일을 반드시 지키라!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라.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15)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 이 안식일을 지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으라” (17)
“ 이것이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 될 것이다! ”(17)

이것이 너희와 나와의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영원한 표징이다!



하나님이 친히 쓰신 돌판을 받들게 된 모세..
순간 심장이 멎었는가 싶었다.
이제까지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돌판에 친히 새겨주시다.
그리고 그것을 모세. 나의 손에 안겨주셨다.

말할 수 없는 영광을 보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다.
형용할 수 없다.

생각해본 적도 꿈꿔본 적도 없는 하늘의 일을 쏟아 부으시듯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정말? 이것이 가능하단 말이야?
이런 백성들을 만드신다는 것이 하나님. 가능하단 말이십니까?

의문이 채 올라오기도 전에
마음 속에서 ‘아멘!!!!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으십니다!!!!’ 라는 소리가 솟구쳐 오른다.

성막, 성막 기구들..
섬길자들이 규례 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우리를 계속 만나주시겠다 약속 하셨다.



언젠가
떨기나무에서 한번 만날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언젠가
아말렉이 쳐들어왔을 때 급히 찾아야 할 그런 하나님도 아니라
물 없을 때, 전갈의 위협이 있을 때 겨우 만날 그런 하나님도 아니라

성막 가운데 임하시겠다는 이 하나님께서 ‘친히’ 돌판에 써주신 것이다.

아. 무겁기는 꽤 무겁다.
증거판이 2개나 되니.

그러나 저러나. 말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그런 터져 흘러 넘치는 감격이 올라왔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거룩한 백성이라 하십니다!!!!”

(근데.....이 시내산 어떻게 내려가지?)




오늘 묵상 본문은 ‘안식일 규례’에 대한 것과 ‘증거판을 받는 모세’에 대한 내용이다.

안식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이렇게 이야기 하신다.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들었을까?
매일 불뱀과 전갈에 쫓기고, 물 없어 헤메고. 광야에 다니느라 얼굴이 꾀죄죄한 이 백성들이 ‘거룩’이라는 말을 이해했을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다’

모르긴 몰라도, 한참 무슨 말인가. 멍하니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안식일에 대해서 묵상을 하면서, 거룩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거룩은 무엇인가?
또 안식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을 사는 나에게 참된 안식은 어떤 의미인가?



먼저는 이 말씀이 생각이 났다.

눅 6: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이제 신약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지켜야 하는 그런 율례가 아니다. 이러한 법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일은 다른 율법과 함께 폐지되었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성전 삼으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참된 안식을 얻을 있는 것.
그리하여 참된 쉼을 얻은 자들은 이제 지켜야 할 안식일이 영원히 없어졌다. 법에 얽매여서 저주 받을 안식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온전히 영원한 연합이 되었기에 이미 영원한 안식 가가운데에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제 눈에 보이는 성막, 성전이 아닌
친히 몸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우리는 그 자체가 성령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어,
어디에서나 내 마음 안에서 하늘의 나라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눅 17:2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렇다면 ‘거룩’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안식을 믿음으로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생명의 관계를 누리며 풍성한 생명을 덧입는 것.
그렇게 하나님과 계속하여 끊임없이 교제하는 것.

그것이 바로 ‘거룩’이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과의 생명의 관계가 끊임없이 되어지는 것이야 말로 ‘구별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룩은 모양이 아니다.
거룩은 흉내내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덧입임으로 인하여, 내 안에 ‘거룩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활동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셨다.
당시 백성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거룩을 그 안식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내신 것이다!

이미 십자가에서 이 일을 다 이루셨다.

2000년 전 십자가에서 있었던 그 일은, 지금도 동일하게 유효하다.
복음은 지금도 동일한 효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며,
그대로 십자가에서 성취하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