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시는 격앙된 목소리였을까?
아니면.. 분노를 참는 차분한 목소리였을까.
혹은 슬픔이 서려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모세야! 모세야..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다!”(7)
“내가 명령한 그 길을 속히 떠났구나. 자기 스스로를 위하여 송아지를 만들고 예배하는구나. 이것을 이스라엘을 애굽땅에서 인도해낸 신이라고 하는구나!!”(8)
8절.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려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이 목이 뻗뻗한 백성들!!
내버려 두거라!
내가 진노하게 내버려 두거라!
내가 모세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할 것이다!!!!“(10)
그리고 모세는 엎드려져 이렇게 구한다.
“ 여호와여! 어찌하여! 권능으로 인도하신 백성에게 진노하십니까?” (11)
“ 맹렬한 노를 그치소서! 뜻을 돌이켜주소서! 화를 내리지 마소서!”
“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냈다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12)
“언약을 기억하소서!! 아브라함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13)
13절....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무척이나 화가나신 듯 하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네 백성이 부패하였다’
내 백성이 아니라 모세더러 ‘네 백성’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다.’ (7)
하나님 얼마나 화가나셨던지.
하나님 그분이, 자신의 백성들을 ‘네 백성’이라 하신다.
그러시며, 진노하여 다 없애 버릴 것이라고 다 진멸해 버릴 것이라고 하신다.
이 백성이 얼마나 ‘속히’ 떠났는지.. 얼마나 야속한지.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다니..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 편에서 이 백성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은
‘너희는 목이 뻗뻗한 백성이야!’ 였다.
그러면서, 모세에게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0)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오늘 이 대목을 묵상하게 되었다.
이 메시지를 들은 ‘모세의 반응’에 대해서다.
모세는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위엄과 선하심 맑고 선명하고 순전한 그런 약속을 맛보았다.
얼마나 위대하신지, 약속을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시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런 모세에게, ‘이 백성 다 진멸하고, 내가 너를 큰 나라 되게 할 것이다’ 라고 했다면..
그것은 엄청난 보증수표를 얻은 셈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 목이 뻗뻗하고, 너무나 모세를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던 이 백성들을 다 진멸해버리고 새로운 큰 나라가 되게 하신다면..
모세는 떨기나무 때부터, 애굽의 10재앙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떻게 이뤄가시는 지 너무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모두 yes가 된다는 것.
말씀하시면 말씀 자체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생각해봤다.
정말 모세가.... 자신의 새로운 큰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0.000001 라도 있었다면 ..
그랬다면... 이 백성 쓸어버리고 새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아멘을 하지 않았을까?
금방 아멘은 못하더라도..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모세의 반응은 달랐다.
모세의 즉각적인 반응은, ‘하나님 그 뜻을 돌려주십시오’ 였다.
그러면서, 모세는 이방인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명성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호소한다.
제발 그 뜻을 돌이켜 주시고, 그 맹렬한 노를 그쳐주시도록..
이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말아 주시도록..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든 것을 다 꺼내어서 하나님을 설득한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까지 말이다.
13절..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옵소서
무엇이었을까?
모세의 마음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얼마든지 이 말 안듣는 백성 이 기회에 싹 쓸어버리고 자신의 새 나라를 만들 수 있는데
무엇이 모세의 마음을 이렇게 간절하게 했을까?
나는 이것을 ‘존재에 대한 사랑’에서 답을 찾게 되었다.
사랑.
관계
그런 것들이다.
만약,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역의 대상’으로 보았다면?
그럼 즉각 다 진멸하고 싶었을 것이다.
누구든 성공적인 사역을 하고 싶으니까..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았다.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럼 모세의 눈에 이 백성은, 어떤 민족과도 바꿀 수 없는 (다른 사람하고도 바꿀 수 없는)유일한 존재가 된다.
존재는 물건이 아니지 않는가.
존재는 상품이 아니잖아
얼마든지 사역의 관점으로 보면 진멸하는 것이 편하겠지만, 존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진멸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하나님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그렇게 보신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 편에서 존귀하다.
모세는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 속에 답답한 부분을 시원케 해드렸다.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명성을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 응답하셨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였던 것이다.
'Old Testament > Exod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애굽기33장_사랑의 속성 (0) | 2021.08.23 |
---|---|
출애굽기32장_원수에 대해서 분노하라! (0) | 2021.08.23 |
출애굽기32장_가장 안전한 자리에 있게 하소서 (0) | 2021.08.23 |
출애굽기31장_거룩과 안식에 대해서 (0) | 2021.08.23 |
출애굽기31장_부르심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과 원리 (0) | 2021.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