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Exodus

출애굽기34장_왜 언약을 세워주세요?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3. 17:59

모세야 내가 언약을 세울 것이다. 이 언약은 말야..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않은 이적이야. 이 언약을 전체 백성 앞에서 행할 것이란다.
네가 머무는 날 백성이 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볼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보게 될 것이다 (10)

출 34:10 -공동번역-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와 계약을 맺겠다. 온 세상 어느 민족 사이에서도 이루어진 적이 없는 놀라운 일을 내가 너희 온 백성 앞에서 이루리라. 너희 주변에 사는 모든 백성이 야훼가 하는 일을 보리라. 이제 나는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너희와 더불어 해보이겠다.



광야였다.
그리고 시내산이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가나안 땅..
철병거를 사용하는 헷족속에 대해서, 벌써 도시문명이 발달된 그것으로 인하여 ‘높은 성벽’이라는 말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는 두려움이 찾아오는 그 땅
바로 가나안이다.

어떻게든 약속따라 언약따라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오기는 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의 일상에 푹 젖다보면
가는 방향도 목적도 잊기 쉬운 법.
‘아 내가 이것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었지?’ 한다는 말이다.

애굽에서 나온 이유도, 지금 광야에 더위를 이기고 있는 이유도
시내산에 이렇게 오래 머무는 이유도
사실 전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함이었던 것을...

아, 하나님은 한톨도 잊지 않으셨다.
11절. 내가 네 앞에서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리니

이런 어마어마한 약속을 해주셨다.
가나안, 헷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어 주시겠다고..

눈을 비비고 볼을 꼬집고 고개를 흔들어도 현실이다.
하나님은 진정 이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다.
너무나 현실로.
이미 가나안은 다 망해 쫓겨난거야. 하는 농도로
아직 현실로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현실처럼 그렇게 말씀하신다.

왜?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그것이 곧 실제인 그런 분이시니까.
하나님은 식언치 않으시니까.



그렇게 이미 미래를 훤히 보고 계신 것처럼
‘그 땅에 들어가면‘ 이라는 전제로
-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 것 (12)
- 그들의 제단을 헐 것 (13)
-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 것 (15)
- 무교절을 지킬 것 (18)
- 안식일을 지킬 것 (21)
- 칠칠절 과 초실절 수장절을 지킬 것 (22)

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24절. 내가 이방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그렇게 밤을 새도록 40일 40야를 그 자리에서
 한 자도 빠뜨릴 수 없는 언약을 빼곡하게
떡도 물도 먹지 않도록.
그렇게 언약의 말씀을 십계명 판에 기록하였다..



좀 당황스럽다.
이것이 오늘 내가 본문을 맞이한 첫 느낌이었다.
왜? 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언약을 해주신다.
철저히 이 백성의 편에서 언약을 해주시는데, 그 당시 가나안 땅 무시무시한 그 땅에 있는 백성들이 다 쫓겨날 것이란 언약이었다.

그것은 온 세상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던 놀라운 일이었고
주변에 사는 모든 자들이 깜짝 놀랄 그런 일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다 쫓아낼거야.
다 심판해 버릴거야.
온 땅이 보게 될거야.
내가 너희 민족과 언약을 세웠다는 것과
내가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이라는 것.
나의 행하심을 온 땅 국민이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백성이 하나님 앞에 신실했나?
이 백성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행했나?
이 백성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했는가?

그런데
왜? 왜 이 백성과 다시 언약을 맺어주시는가.
왜? 또 다시 돌판을 새겨주시는가.

나는 오늘 새롭게 이것이 참으로 의아하고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된다고 생각했다.

가만 살펴보면 아무 이유가 없다.
바로 몇 장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더디내려온다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다.
그리고 모세는 그것에 너무 화가 나서 십계명 돌판을 다 깨버렸다.
그정도로 이 백성은 광야에 있는 내내 불평과 불만과 등등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쏟아논 민족이었다.
예쁜 구석을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민족.. 어떻게 말하면 그렇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백성을 향해 또다시.. 또다시 언약을 맺어주신다.
왜??????
대체 왜?????



‘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의’는 언약에 신실한 것. 신실하여 순종하는 것인데..
사실 백성 편에서는 하나님 앞에 신실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고, ‘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만큼 인간은 타락해있었고 하나님을 대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계속 언약을 맺고 이 백성을 살게 하시는 이유에 대해서..
바울이 ‘의’라는 개념을 ‘은혜’라는 개념으로 끌어올려 도입을 한 것이라고..

그래서 ‘은혜’가 맞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은혜..’ 인 것이라고..



그런 생각이 든다.
은혜에 대해서..

왜 언약을 세워주세요?
라고 하나님께 물어본다면..

하나님은 ‘사랑하니까’ 라고 대답하실 것이다.

전혀 논리에도 안맞고
이해도 안되고
설명도 안되고
그냥 모든 질문이 숨죽인채 스탑되 버리는..

그런 하나님이시다.
정말 이것을..어떻게 표현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다.



왜 언약을 세워주세요?
사랑하니까.
포기할 수 없으니까.

내 모든 마음의 동기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