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estament/Numbers

민수기6장_하나님은 슈퍼맨이 되게 하지 않으신다.

Abigail_아비가일 2021. 8. 27. 17:18

한 나실인의 고백.

하나님께 구별된 자.


여러 가지 생각이 휩쓸기는 했다.

이를테면, 나는 나실인이기에 포도주도 먹지 않고 포도는 보지도 않는다. 게다가 생명을 상징하는 머리는 계속 길러가며 절대 시체와 가까이 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이 어쩌면 우쭐하게 하는지도 몰랐다.

어깨가 구부정한 나 이지만,

누군들 곱추같다고 툭 튀어나온 눈알을 보며 놀려대기도 하지만..

이럴 때 쯔음이면 내가 더 으쓱해 보인 것이었다.

 

그러다가도 다시, 누구를 바라보고 이 나실인을 서원했는가 생각해본다.

과연 우쭐한 것이 타당한 것인가.

나는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하나.

내가 이런 귀한 세월을 긴 생각을 하며 보내야 하는 것인가.

 

그저 지나칠 때 몰랐던 것들.

1시간이 10분이 그렇게나 길게 느껴진다.


나는 몸을 구별한 자이다.

하나님께 특별한 서원을 드렸다.

나를 드리는 서원.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면 다시 무를 수 없지 않은가?

내 전부가 하나님께 드려졌으니. 다시 돌려받을 수는 없는 법..

나의 몸을 구별하여 드린다.

나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값지고 보람되다고 생각했다.

내 몸을 구별하여 드린. 나는 거룩한 자라고 했다.


‘나실인’

 

오늘 본문에는 ‘구별’이라는 단어가 무려 8번이나 나온다.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 ..(2)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 ..(4)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6)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7)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8)

 

....


과연 이 사람은 구별하여 드린 시간동안 천상의 노래만 드렸을까?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

하나님께 나를 드리긴 드렸지만, 전혀 드려지지 않은 것 같은 자신의 내면의 모습에 오히려 당혹스러웠을 수도.

드리기 전보다 더 큰 절망가운데 있었을 수도 있다.


나실인은 하나님, 가장 크고 두려우시며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려진 존재’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교만과 우월함과 열등감과 스스로 어찌해 볼 수 없는 무력감이라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들을 계속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 드려진 나.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 없는 나.

 

이 모순 앞에서 처절하게 몸부림 칠 수 밖에 없는 시간이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하나님께 드려졌다고 하는 ‘나실인’의 마음 속에 어떤 것들이 일어났을까..

어떤 마음이 일어났을까..

거룩한 소원. 그리고 일상의 것들의 유혹에서부터..

 

이 고대근동에 사는 이 사람은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


다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슈퍼’를 만드시지 않는다는 것.

연약함 가운데 두시는 것을 말이다.

 

내가 만약 하나님께 드려졌다고 해서, 슈퍼우먼이 된다고 가정해보자.

무엇이든지 척척해내고, 결국에 모든 것에 승리하며 어마어마한 놀라운 일들을 척척 해낸다고 해보면.. 누가 어떤 동기로든 하나님께 드려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슈퍼맨이 되게 하지 않으신다.

있는 모습 그대로,

아니 더욱 나의 처절한 내면의 실존에 직면하게 하시는 것이다.

나의 약함.

나의 헐벗음.

부셔지기 쉬운 나의 어떠한 것들에..

 

차례대로 부딪히고 또 부딪히면서,

 

그래. 하나님 외에 없지.

주님 외에는 없는 것이지.


아 그래, 오히려.

내 안의 처절한 실존을 발견하는 것. 그 자체가 나실인으로서의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

오직 주님 뿐인 그 삶 말이다.

 

그래서 행복한 삶.

내가 사라짐으로 인해 하나님이 100이 되어주시는 그 삶으로 인해,

나실인이 나실인 되는 것이 아닐까.